우리 문화 복원할 ‘의로운 자’ 없는가
  •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 ()
  • 승인 199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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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이벤트는 많아도 꼭 기려야 할 문화 행사는 썰렁하다. 세종 탄신 600주년도, 횡보 탄생 100주년도 그저 흘려버리고 만다.”
얼마 전에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내가 얻은 최고의 소득 가운데 하나는 오사카의 동양도자미술관에 갔다온 일이다. 사나다 히로코(眞田弘子)씨의 안내로 김시업 교수와 함께 나카노시마(中之島)의 미술관을 찾은 날은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나카노시마를 끼고 흐르는 강물과 작은 다리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환해졌다. 오사카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네들이 시내를 흐르는 요도가와(淀川) 지류들을 복개하지 않고도 살려냈다는 점이었다.

그 전 날 간사이(關西)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해안의 굴곡이 깎이지 않은 채 바다와 육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면을 유심히 살피면서, 해안을 한없이 매립하고 그 위에 철조망까지 쳐놓아 살풍경하기 그지없는 나의 삶터 인천(仁川)을 생각하며 내심 울화를 끓였는데, 시내를 흐르는 요도가와를 보자 환해졌던 내 마음은 다시 어두워졌다. 서울의 청계천이 상기된 것이다. 복개로 사라진 청계천, 그와 함께 광통교는 콘크리트 밑으로,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소외되었으니, 이 무슨 야만적인 짓인가.

문화를 대접하는 일본인의 배려에 감탄

다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옛 서울은 곳곳에 내가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놓인 아름다운 도시였다.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나오는 다리를 잠깐 적어 보면, 자수궁다리 금청교 송첨교 송기교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량교 새다리 효경교 마전교 영도교 살곳이다리 북창교 장서원다리 장생전다리 십자각다리 혜정교 금천교 파자교 철물교 옥천교 황교 이교 향교 장경교 첫다리 관기교 광례교 토교 신석교 수각교 전도감교 소광통교 굽은다리 군기시다리 구리개다리 주자교 필동교 무침교 청녕교 청교 석교 경고교 기교 염초청다리 배다리 종침교 침교 등등, 이렇게 많다.

나는 센탄노기바시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 모든 냇물과 다리가 침몰하는 것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진 그 모든 문화사적 추억을 우울하게 조상(弔喪)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매 청계천에 바쳐진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이 허공을 떠도는 귀신의 신세를 어찌 면할 수 있으랴!

미술관에서 나는 다시 착잡해졌다. 과연 이름이 헛되지 않게 한·중·일 세 나라 도자기의 명품이 기가 막히게 수집되어 있었다. 특히 이역에 팔려와서도 오롯한 자태를 음전하게, 아니 황홀하게 드러내는 한국 도자기들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 협상의 우선 대상품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구나 하는 탄식과 함께 우리의 못남이 뼈저렸다.

더구나 문화를 대접하는 그네들의 세심한 배려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실 안에는 조명이 일절 없고, 도자기를 모셔놓은 전시대 안에만 아주 은은한 빛을 주어 오직 도자기들만 그윽하게 떠오르게 되어 있었다. 오사카는 상공업 도시라 문화적으로 볼 것이 없는 곳이라는 사나다씨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만으로도 오사카는 충분히 문화적이었다. 미술관 소식지를 들추어 보니, 오사카 사카이(堺) 출신으로 뛰어난 여성 시인인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의 팬클럽이 결성되었다고 열심히 사람들을 모은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을 헐어버린다니…

일찍이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으로 물질적 가난 속에서도 의젓하고 너그러웠던 우리가 어쩌다 미국과 일본에서 뛰는 야구 선수들의 시합 성적이 버젓이 정규 뉴스 시간에 오르는 나라가 되었을까. 오사카가 배출한 대표적 시인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의 아담한 시비(詩碑)를 돌아보며 <유모차>를 나직이 읽어 보았다. ‘어머니가/덧없고 서러운 것이 내리네요/수국빛 서러운 것이 내리네요/끝없는 가로수 그늘을/ 쓸쓸히 바람이 지나가네요.’ 공연히 내 마음이 안쓰러워지는 것이 시 탓만은 아닐 터.

96년 세계 도시 통계를 비교해 보도한 기사는 서울의 자화상을 ‘문화는 없고 범죄는 많다’로 요약했다(<한국일보> 97.8.20). 또 한켠을 보니, 만해(卍海)의 심우장(尋牛莊)이 재개발로 헐릴 판이라는 딱한 소식이다. 어쩌면 이렇게 민·관이 함께 문화 지우기에 성화가 났을까. 문화가 가진 강력한 통합적 기능에 맹목이니 우리 사회가 경제적 풍요 속에 더욱 빈곤한 분열로 빠져드는 것이 아닐지. 요란한 이벤트는 많아도 꼭 기려야 할 문화 행사는 썰렁하다. 세종 탄신 600주년도, 횡보 탄생 100주년도 그저 흘려버리고 만다. 그 동안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단절된 우리의 문화사적 추억을 정성스럽게 복원하는 작업에 차근차근 착수할 의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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