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북한의 <아리랑> 되찾기 경쟁
  • 오사카·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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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감독·주연한 영화 필름 입수 앞다퉈…일본인 ‘소장가’는 딴전
남북한 간에 영화 <아리랑>의 필름을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아리랑>은 26년 春史 羅雲奎가 감독·주연을 맡은 무성 영화로, 암울한 현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절망에 몸부림치는 조선 젊은이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영화사에 불후의 명작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작품은 어찌 된 일인지 필름 한 커트 남아 있지 않다. 남북한 영화인들과 언론은 이 ‘전설의 필름’을 손에 넣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의 영상자료소를 뒤졌으나 이제껏 존재 유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70년대 초부터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필름 수집가 아베 요시기게(安部善重·69)씨가 이를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9월 초순, 오사카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베씨는 소문을 듣고 자신을 처음 찾은 이는 70년대 초 조총련 영화제작소 소장을 맡고 있던 여운각씨라고 말했다. 여소장은 아베씨가 우표 수집광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각종 북한 우표 세트와 개성 인삼을 들고와 <아리랑> 필름을 보여달라고 매달렸다. 또 언제든지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 수 있는 특별 방문권과 시가 천만엔이 넘는 일제 소니 영상 편집기를 제공했다. 그는 지금까지 아베씨 자택을 드나들고 있다.

한국 쪽에서는 15년 전 정수웅 감독(당시 MBC 제작위원)이 아베씨 자택을 처음 방문한 이래 영화진흥공사·영상자료원 등이 <아리랑> 필름을 공개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또 춘사의 차남인 영화감독 나봉한씨, MBC·SBS 등 언론사들도 <아리랑> 찾기에 나서 수차례 아베씨를 방문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아리랑> 찾기 운동을 벌여온 재일교포 역사학자 신기수씨에 따르면, 북한은 광복 직후부터 <아리랑>을 찾으러 나섰다고 한다. 신기수씨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월북한 <아리랑> 출연 배우 주홍규 등이 참석한 좌담회 기사를 한국전쟁 직후 발행한 평양의 영화예술 잡지에 게재하였고, <나운규 시대와 그 생활>이라는 책자까지 발간했다.

실제로 갖고 있는지는 불투명

아베씨는 북한이 <아리랑> 필름을 찾는 이유를 여운각씨의 말을 빌려 ‘민족의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북한이 <아리랑>을 찾은 것은 그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즉, 김정일이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는 선전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조총련에 필름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았다.

남북한 간의 쟁탈전이 점점 치열해지자 아베씨는 92년 정수웅·여운각·신기수 씨를 각각 한국·북한·재일교포 대표로 지목하고 3자 간에 신사 협정을 맺도록 했다. 이 협정은, 세 사람이 아베씨가 소장하고 있다는 식민지 시대의 한국 영화 60여 편을 공동으로 조사 발굴하고, 발굴된 영화는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이 신사 협정에 따라 처음 발굴된 영화가 바로 그 해에 공개된 <이웃 사랑>이라는 영화다. 아베씨는 기자에게 이런 방식으로 올 가을쯤 또 한 편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베씨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아리랑>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열 살 무렵, 집에 있는 영사기를 통해서였다고 했다. 그후 46년 16mm로 복사하면서 <아리랑>도 같이 복사해 두었다고 했다.

기자는 그때 그가 작성했다는 동양극 영화 목록 쉰다섯 번째에 <아리랑>이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베씨는 창고 속 어디엔가 뒤섞여 있을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할 뿐, 끝내 소재 확인을 거부했다.

15년째 아베씨를 끈질기게 만나 반환 교섭을 벌이고 있는 신기수씨는 그가 <아리랑> 필름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다. 또 아베씨가 나운규의 초기 작품 <두만강을 건너서>와 <아리랑>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신기수씨는 <아리랑>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이 필름의 소장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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