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노동은 지음 <한국 근대 음악사-1>
  •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 승인 199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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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교수 지음 <한국근대음악사 -1>… 개항에서 한일합방까지 음악운동 조명
노동은은 객관적인 음악사를 쓰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는 객관성 여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하나의 사관에 입각한 음악사를 표방한다. 그가 표방하는 것은 민족 음악 사관이다. 표방 정도가 아니다. 그는 민족적 음악사를 부흥사처럼 격렬한 어조로 외친다. 부흥사라는 표현은 그에게는 과장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과거를 뼈아프게 뉘우치면서 그 ‘간증’을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서양 음악 문화에 한없이 행복했던 우리들은 80년대 앞에 무력해져 감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이 그래서 80년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비로소 눈·귀·심장·대뇌가 잘못 조작되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며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인용에서 두 번이나 인용되는 80년대란 광주의 충격과 그 충격 속에 살았던 시기를 말한다. 이 충격을 만나면서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반민족성, 다시 말해서 광주의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자신의 속성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것을 뉘우치는 내용이 바로 위에 인용한 구절이다. 즉, 대뇌까지도 서양 음악에 맞추어 조작되어 있었다는 ‘잘못된’사실의 통감이다.

뉘우침은 노동은을 ‘거듭난 삶’의 새로운 실천으로 이끌었다. ‘우리 음악 역사 바로 보기’가 그것이다. 바로 보기 위해서는 때로 거꾸로 봄도 필요했고 파헤쳐 봄, 확대경으로 봄, 발로 봄 등 온갖 새롭게 보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해방 공간, 식민지 지대, 조선 후기, 개화기, 북한의 음악사였다. 이 연구들을 통하여 그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던 민족적인 음악사의 맥을 다시 드러내 보이려 노력하였다.

<한국근대음악사-1>(한길사)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은은 이 책이 ‘1860년부터 1910년까지 50년간 음악과 세계에서 민족의 자주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음악 역사서’라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 음악사는 186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85년 간의 음악 역사이다. 그 이전은 조선조 후기가 되고 그 이후는 현대가 된다. 그 중에서 1910년 한일합방 이후는 <한국근대음악사-2>에 해당된다.

<한국근대음악사-1>은 다시 네 시기로 나뉘어 서술된다. 개항이 단행되는 1876년까지의 16년(1기)과 그로부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는 1894년까지의 8년(2기), 다음 제1차 한일협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는 1904년까지의 10년(제3기), 그리고 1910년의 한일합방에 이르는 6년이 그것이다. 구제도가 몰락하면서 두렵고 알 수 없는 힘들이 밀려들어오고, 이에 대항하여 나라를 새롭게 일으켜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이 위에서부터 또 아래에서부터 일어났다가 결국 무너져 내리는 이 격동의 시기를 그리면서 그가 조명하는 것은, 우리 민족은 이 시기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대응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최초의 찬송가 유입이나 에케르트에 의한 군악대 창설 같은 사실보다는 개화파로 활동한 신식 악대의 나팔수 이은돌, 민간의 애국가 제정운동, 민족 음악 양식의 새로운 발전을 이룬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와 ‘창극을 가능케 한 협률사’가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그의 이러한 관심 앞에 국악과 양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양악과 국악은 물론 정악과 속악, 제도권과 비제도권, 전문적인 것과 비전문적인 것을 가리지 않고 그 안에 민족 음악의 흐름이 확인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루었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참고 문헌, 성의 있는 색인이 붙어 있는 이 책은 학술적이면서도 동시에 ‘민족 음악 부흥사의 설교’가 가질 만한 대중적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은 전문인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어서 특이한 단어와 개념, 열기에 가득찬 거친 문장에 익숙하게 되면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읽고 감동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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