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치마 불자''의 힘 보여주자
  • 김현숙 (문화 평론가)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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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힘은 여자 신도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이 절 출입과 보시를 중단해 이권에 눈 먼 사판승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 사판승들에게는 종정의 교시보다 더 두려운 일이 그것이리라.”
민머리에 헬멧을 둘러쓰고 각목을 차는 스님들 모습이 가관이다. 오늘 아침에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중들이 돈맛을 알아 저러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하며 승려와 정치인 들의 행태가 어떻게 같은지, 그리고 그 복사의 양태에 얼마나 염증이 나는지에 대해 한탄했다.

나는 나이 지긋한 그 택시 기사가 자기 안사람에게 이제 절에 다니지 말라고 일갈했다는 말을 듣고 성철 스님이 입적하던 때를 떠올렸다.

10년 장자 불와에 묵언 고행, 그 신화 같던 생애에 전국민이 숙연하던 때가 5년 전 이즈음이다. 한국 불교 10년치 포교를 성철 스님이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해인사로 몰려들던 감동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냉소와 비난은 무척 대조적이다.

이번에 신도 백만이 떨어져 나갔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성철 스님 같은 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떨어져 나간 백만 신도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지는 4년마다 백만 신도가 등을 돌린다면 한국 불교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종정조차 권위를 잃은 한국 불교가 갈 방향은…

성철 스님이 자신의 깨침에만 몰두한 개인주의자라는 항간의 소리도 있었으나, 사실 이 땅에서 누구보다 정화 불사를 먼저 느끼고 또 실제로 결사를 한 사람이 성철이었다. 문경 봉암사의 성철과 청담. 이 두 사람이 광복 후 한국 불교의 혁명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청담이 정화 불사를 마지막까지 이끌고 간 실질적 지도자였다면 성철은 그 정신적 리더였다. 정화 결사가 결국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하고, ‘깡패 스님’들로 오염되자 토굴을 파고 들어가 결사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은 것이 청담과 달랐을 뿐이다. 불교 집안의 일이 담장 밖으로 번져 나가 세속사와 엉키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조계종 사태의 핵심은 그 택시 기사의 말처럼 ‘돈 문제’에 귀결된다. 종헌 종법을 수호하자는 것도 불교계 헌법과 법률대로 이권을 가르자는 얘기와 다름없어 보인다. 조계종 총무원장실을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은 그 미로와도 같은 입구와, 나이트클럽 문지기 못지 않은 보초 스님들의 살벌한 첩첩 경계에 놀랄 것이다. 총무원장 자리가 무엇이기에 ‘조직 폭력’의 큰형님 같은 호위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총무원장의 지위와 권한을 알고 나면 그런 의구심은 순식간에 풀리고 조계종 사태의 본질도 쉽게 이해된다. 종정이 내각책임제의 대통령처럼 아무 권한이 없는 상징적 지위라면, 총무원장은 문자 그대로 권력의 시작이요 끝이다. 94년 종단 개혁 때 본사 주지 선출제가 도입되어 불국사·해인사 등 전국 24개 본사와 이에 소속된 1천7백여 말사의 주지를 임하고 면하는 절대 권력은 제한되었지만, 종단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처리하는 권한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 월하 종정이 그 중 일부 권한을 떼내 달라는 것이 갈등의 한 원인이다. 전국에 있는 사찰과 국보급 문화재의 경우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임야·논밭 등 부동산 임대료와 관광 수입은 수백 조 원으로 추정된다. 총무원이 구성된 60년 초 이래 지금까지 28대에 걸쳐 4년 임기를 채운 총무원장은 서의현 원장 등 몇명에 불과하다.

불교계 최고 어른은 누가 뭐래도 종정이다. 종정이라면 성철 스님처럼 신성 불가침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종정을 지금처럼 선출직이 아니라 종신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계종 사태에 종정이 직접 개입하면서 종정은 분쟁을 조정할 입지를 잃었다.

결국 한국 불교는 방향을 잃고 마는 걸까? 종정조차 그 권위를 잃고 만 지금 한국 불교의 힘은 어디에서 되찾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정화란 자기 혁신이요 자기 정화라는 깨달음을 갖고 부처님 법대로, 구도자답게 정진하는 스님들의 몫이다. 그렇지 못할 때, 최후의 힘은 여자 신도들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승려들 자신조차 한국 불교는 ‘치마 불교’라고 비웃고 있지만, 한국의 여성 불자들처럼 보시와 기도에 충실한 신도들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일부 승려와 재가 신도들에게 경멸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그 모든 보시와 기도가 사회화하지 못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치마 불자’들은 절 출입과 보시를 중단해 이권에 눈이 먼 사판승들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 사판승들에게는 종정의 교시보다도 두려운 일이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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