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삶]시인 김정환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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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문화운동가·DJ로 활동… 클래식 입문서 <음악이 있는 풍경> 펴내
우리 주위에는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시인 김정환씨(44)에게는 이 말을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로 바꾸어야 타당할지 모른다.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와 함께 80년대 시의 시대를 견인한 시인 김정환. 그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을 거쳐 민중문화운동연합 의장·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 등을 맡으며 90년대 초반 진보적인 문화운동 진영의 사령탑으로 우뚝 섰다.

소련이 망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시와 소설로 90년대를 정리하는가 싶으면 한국 통사를 쓰고, 역사에 눈을 돌렸나 싶으면 어느새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있다. 최근 그는 기독교 방송에서 클래식 프로그램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진행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클래식 입문서 <음악이 있는 풍경>(이론과실천)을 펴냈다.

얼핏 보기에 그의 활동은 여러 갈래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욕망’에 근거한다. 소설가 최인석이 이성주의라고 이름 붙인, 세상을 해석하고 끌어안으려는 시도 말이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그에게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는 집필 노동자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끊임없이 읽고, 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가진 유일한 욕심이 지식욕이라고 말한다. 그의 독서법은 사전을 ㄱ부터 ㅎ까지 독파하는 것이다. 철학·정치경제학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역사에 대한 정보도 그렇게 빨아올린다.

그는 노동자문화운동연합 의장 시절을 회상한다. “노문연은 노래·춤·영화·문학 등 장르별 분과 체제였다. 알아야 면장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두 달 동안 영화 수백 편을 섭렵했다. 물론 문학과 음악은 따로 배우지 않고도 면장을 할 수 있었다.” 노문연은 따로 논의가 필요할 만큼 90년대 초 진보적 문화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성취가 오로지 김정환 덕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일 테지만, 그가 전문적인 예술운동이 필요하다고 기치를 내걸지 않았더라면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전진 기지로서의 노문연 또한 없었을 것이다.

“예술가는 인류의 모든 유산을 끌어안는 사람이다”

그의 예술적 소양은 문학 이외의 분야까지 넘나든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음대를 가라고 추천받을 정도로 미성이었던 그의 음악적 소양은 남다른 데가 있다. 통념과 달리 클래식이 진보적 문화였다고 해석하는 그는 예술가란 인류가 성취한 모든 유산을 끌어안아야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음악이 있는 풍경>에는 이같은 그의 예술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음악에 대한 이론적 설명과 ‘광경 언어’를 결합하는 일에 도전했다.

“음악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어휘들을 보라. 좋다, 감동적이다, 훌륭하다…, 이 얼마나 미개한가. 막상 작업해 보니 음악 평론가를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목차부터 특이하다. 시대별·작곡가별 목록은 찾아볼 수 없고, ‘주제와 변주’ ‘열애’ ‘성과 속’ 등으로 각 장이 구성되어 제목만 보아서는 누구를, 어떤 음악을 소개하려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첫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눈을 감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 슬픈 귀가 열린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의 기억이 귓속으로 명징하게 흘러든다. 음악이 흐른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이다. 어수선한 축제 분위기가 흩어지며 오래되고 낯익은, 그러나 푸르른 희망의 음색으로, 느리게. 어느새 그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선율은 독일 민요, 어여쁜 장미야 너 아름답다…’

언어 자체가 음악을 닮았다. 정리된 정보와 주관적인 찬사를 뒤섞어놓은 기존 입문서와 달리 시어로 음악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원래 8백장 분량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쓰다 보니 원고가 저절로 마구 늘어났다는 그의 말대로, 이 책은 샘에서 물이 흘러넘치듯 유려한 풍경을 열어 보인다.

요즘 그의 일터는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국문학학교다. 시인 최승자 최승호 정호승 강은교, 소설가 이순원 이승우 김원우 최인석 등 내로라 하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95년 학교를 맡았을 때 그가 처음 문학 지망생들에게 한 말은 이랬다. “자기 안에 벽을 세워라. 어설프게 성공한 예를 부러워하지 말고 제대로 된 작가를 꿈꾸어라. 브람스를 보라. 베토벤에 대해 열등감을 가졌던 브람스는 자신도 모르게 베토벤을 관통했다. 브람스의 벽은 베토벤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의 시에 대해서는 증인이 꽤 많다. 시인 신경림은 ‘그의 시적 동력은 비평 정신이다. 그는 패배주의에 물든 세기 말의 문턱에서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갈 통로를 찾고자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보았다. 백낙청은 ‘뚝심과 지적 세련을 두루 갖춘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시와 삶이 다르지 않아서 저돌성·뚝심·이성주의는 그의 성격을 이룬다. 소설가 최인석은 그의 비대한 몸짓과 너털거리는 웃음,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고집에서 한 어린아이를 본다.

탱크 같은 저돌성 버리고 ‘섬세한 새 출발’

요즘 김정환은 20세기라는 화두를 붙들고 천진난만한 투지를 불사르는 중이다. 그가 보기에 동유럽권 몰락이 모든 의미의 끝인 양 요란하게 절망하는 것도, 그것 보라고 비웃는 것도 불순하고 불성실하다. ‘그렇게, 비유하자면 동유럽권이 속속 공산화했다. 그렇다. 거꾸로가 아니다. 각질화가 내용이고 공산화가 비유였다’라고 통찰한 그는 ‘그걸 이제사 깨달은 우리의 한탄이 더 문제다. 한탄이 각질보다 더 딱딱한 절망의 외피를 까는 까닭이다(<각질>)’라고 말한다. 그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이데올로기의 빈 자리를 대체하지 않고 그 빈 자리를 21세기의 위대한, 묵중한 자양분으로 전화시킨다(<20세기를 만든 사람들>)’라고 적는다.

탱크와 같은 저돌성으로 시대를 가로질러 온 김정환. 이제 그가 섬세한 유영을 시작하리라는 것은 그의 ‘뽕짝’을 들어보면 안다. 노래방 무대에서 김정환처럼 우아하게 뽕짝을 부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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