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 대 <아미스타드>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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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소재로 한 <타이타닉> <아미스타드> 2월 말 개봉
오는 2월 말 거함 2척이 한국에 입항한다.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과 노예 상선 <아미스타드>. 두 배의 선장은 각각 제임스 카메론과 스티븐 스필버그다. <터미네이터 1·2> <에일리언 2> 등에서 특수 효과 기술과 이야기를 결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근작이 14일과 21일 개봉되는 것이다.

8주째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타이타닉>은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감독·음악·주제가 상을 휩쓸었으며, <아미스타드>는 ‘스필버그가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고 만든 혐의가 짙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사회 의식이 두드러진 대작이다.

두 감독은 모두 실화에서 소재를 구했다. 카메론 감독은 1912년 처녀 항해에서 북대서양의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타닉호 사건을, 스필버그는 1839년 노예 상선 아미스타드호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을 소재로 택한 것이다.

실화에 접근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카메론 감독은 복원보다는 해석과 구성에 주력했다. 그 결과 <타이타닉>은 재난 영화가 아니라 장대한 러브 스토리가 되었다. 영화를 찍기 위해 바닷속 타이타닉호의 갑판에 열두 번이나 올랐다는 카메론 감독은, 유람선의 잔해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승선시켰다. 그 상상력 덕분에 타이타닉호는 침몰한 지 86년 만에 3천7백73m 바다 밑에서 떠올랐다.

스필버그는 발굴과 복원에 공을 들였다. 아미스타드호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다른 노예 해방 투쟁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스필버그는 아미스타드 연구센터와 협조해 사건의 전모를 복원했다. <쉰들러 리스트>가 고발이라면 <아미스타드>는 고해성사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피터팬 신드롬에 갇힌 흥행사’라는 딱지를 떼어냈던 스필버그가, 내친 김에 노예 제도를 통해 부를 축적한 미국의 치부를 건드리면서 역사 탐구에 본격으로 나선 것일지는 의문이다.

미국 평단, <타이타닉> 호평, <아미스타드> 혹평

평단의 평가와 흥행 실적을 보면 승자는 단연 <타이타닉>이다. UPI 통신사는 2월4일자 기사에서 ‘흥행 수입이 3억달러를 넘어섰고 예매율이 역대 최대 흥행작인 <쥐라기 공원>을 앞질렀으며, 수익성이 가장 높은 5대 영화에 꼽히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타이타닉>의 성공은,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에 따르면 ‘재창조된 사실주의의 승리’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동안 열일곱 편에 이르며, 다큐멘터리 열여덟 편과 관련 서적 1백30여 권이 쏟아져 나왔다. 2시간40분에 걸쳐 침몰한 타이타닉호는 수초 만에 끝나는 비행기 사고나 우주선 폭발과 달리 드라마가 펼쳐질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카메론은 진보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낙관에 찬물을 끼얹은 대참사를 ‘파국을 부르는 인간의 오만과 그것을 이겨내는 고귀한 인간성’이라는 틀로 재구성했다. 카메론에 따르면, 타이타닉호의 참사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제작사의 공언과 항해 신기록을 세워 신문의 헤드 라인을 장식하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선장의 오만, 빙산 감시 임무를 소홀히 한 선원의 부주의가 합쳐진 결과다.

침몰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타이타닉호 안에서 돈 많은 사업가와 약혼한 17세 소녀 로즈(케이트 윈슬렛)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가난뱅이 화가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랑이 펼쳐진다. 감독은 1등 객실의 따분한 가식과 3등 객실의 약동하는 생명력을 대비시켜 두 사람이 교감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그들의 사랑은 인습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 된다.

카메론은 실제 촬영과 특수 효과 장면을 교묘하게 짜깁기해 극적인 효과를 높였다. 배가 굉음을 내며 침몰할 때, 돌고래떼가 배 주위를 춤추듯 유영하는 장면 앞에서 관객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조작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아미스타드>는 스페인 국적 상선 아미스타드호에서 선상 반란을 일으켜 매사추세츠 법정에 서게 된 아프리카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남북전쟁이 터지기 30년 전인 1830년대. 남부와 북부의 갈등이 격화하던 시기였던 만큼 사건은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서 표류한다. 변호사 로저 볼드윈(매튜 매커너히)은 흑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법정 밖에서 뭇매를 맞는다. 재선을 앞둔 대통령은 남부의 표를 의식해 재판부를 교체해 재심을 진행한다. 여기에 노예 해방을 위한 전직 대통령 존 쿼시 애덤스(앤터니 홉킨스)의 활약이 대비된다.

스필버그의 <아미스타드>는 흑인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초기작 <컬러 퍼플>에 비하면 박사 논문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에 충실했으나 너무 경건하다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스스로 사건에 취한 나머지 감동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듯이 보인다. 다섯 차례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도 감정 이입을 강요하듯 수시로 끼여든다.

영화는 법정 공방보다는 선상의 참상을 고발하는 대목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광포한 반란의 밤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현란한 촬영 기술 덕에 몸서리쳐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아미스타드가 이상적인 소재가 아니라고 혹평했다. 아미스타드 사건은 당사자들에게는 커다란 성취이지만 미국 노예들의 슬프디 슬픈 연대기에서 보면 속빈 강정 같은 값싼 승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반응만 놓고 본다면 스필버그는 소재의 무게에 눌렸고, 카메론은 자기만의 메시지를 가진 흥행 작가로서 명성을 굳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한 달여 앞둔 지금 태평양 건너에서 두 작품이 벌이는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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