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자우 감독 <남경 1937>
  • 전찬일 (영화 평론가) ()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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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자우 감독 <남경 1937>/대학살의 비극과 순수한 사랑 이야기
할리우드 ‘큰손’들이 대작을 앞세워 화려한 팡파르를 울리며 입성하기 시작한 여름 흥행 시즌에 소리 소문 없이 중국에서 날아온 <남경 1937>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학살 사건,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는 ‘남경 대학살’을 다룬 대작이다.

37년 7월7일 일본은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해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8월13일 상해를 공략한 뒤 중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곧 여세를 몰아 12월13일 당시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이때 일본군은 중국군 포로와 일반 시민을 대량 살해했는데, 첫 6주 동안 약 30만명을 살육했다(매장된 시체가 15만5천명에 달했으며, 중국측은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43만명이 희생되었다고 발표했다).

남경 대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조명하지만 이 영화는 그 비극에 거시적·직접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일본인 아내를 둔 의사 가족, 연인 사이인 소학교 선생과 중국 군인을 두 축으로 삼아 극을 전개한다. 그들이 겪는 애환과 고통을 통해 비극성을 강화한다고나 할까.

<남경 1937>은 사실 추적에만 치중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나 파시스트들을 향한 선동적 고발극도 아니다. 전쟁의 잔혹성과 폐해를 일깨우려는 교훈 영화 또한 아니다. 통속적 영웅담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비극과 웅장함과 순수함이 결합된 ‘사랑 이야기’이다. 제5 세대로 분류되는 오자우 감독은 연출에서 휴머니즘에 주안점을 두었고, 감정에 충실했다.

전쟁과 인간의 본질 탐구

감독은 이 영화의 본질이 ‘삶에 대한 경배’라고 했다. 민초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경외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사람이, 삶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심 인물들이 모두 전쟁의 위력 앞에 무력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질긴’ 존재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감독은 흔히 이런 류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남경 1937>이 피와 폭력으로 얼룩져 자극적이거나 벌거벗은 시체가 즐비한 나열식 영화가 되지 않기를 원했다. 사랑 이야기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말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사실 <남경 1937>에는 비판 받을 부분이 꽤 많다. 남경 시 당국의 전적인 제작 지원을 받았다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국책 영화 냄새가 풍긴다. 흥행의 귀재 스필버그가 전세계 영화팬들의 눈물샘을 장악해 버린 <쉰들러 리스트>나, 한 소녀의 아픔을 통해 광주의 비극을 조망한 <꽃잎>과 같은 세련과 유려함이 없다. 역사적 사실에 의한 대서사와 개인사의 충돌로 인해 때로는 부조화마저 느껴진다. 몹신(군중 장면)의 엄청난 규모에 탄성이 나오지만 연출이 미숙해 어색한 감도 없지 않다. 학살 장면들은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고, 타이밍과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그 효과가 반감된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미덕들이 결점을 보완한다. 더욱이 그 속에는 다른 영화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진실성과 뚝심이 배어 있어 아름답다. 냉소와 포기가 아니라 삶을 향한 성실성과 전망이 들어 있어 감동을 선사한다. 투박함과 우직함이 오히려 눈부시다. 특히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소재를 흥미 위주로 탈색시키지 않은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량 학살과 피흘림은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를 다루기 위한 매개 수단에 불과하다”라는 감독의 말에서 잘 드러나듯이,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한 카메라워크나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은 자제력은 놀랍다.

<남경 1937>은 할리우드 대작처럼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전쟁 영화 같은 긴박감을 넉넉히 갖추고 있지도 않다. 걸작 내지 수작이라 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목적을 다했다.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전쟁과 인간의 본질, 그리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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