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지 말자
  • 김성기(서울대 강사·사회학) ()
  • 승인 199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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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탐닉할 만한, 진짜보다 월등한 가짜인가에 사람들의 흥미가 쏠리고 있다. 이는 분명히 병적인 현상이다. 세기 말의 ‘문화적 에이즈’라 부를 만하다.”
‘안녕히 가세요’. 톨게이트 입구에 붙은 표지판이 말한다. 우리 일행은 ‘서울이여, 안녕!’ 하고 화답한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차에 속도가 붙는다. 윤수일과 방실이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노래에 맞춰서 차 역시 신나게 달린다. 이제 우리는 떠난다. 서울의 혼잡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심신을 회춘시키고자 자연을 향해 진군한다. 레저의 계절에 부응하여 기획된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연 학습’이라는 명목을 앞세우고.

자가용은 참 쓸 만하다. 서너 대만 동원해도 열댓 명이 같이 움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도심의 교통수단으로는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는 추세이긴 하나 자연 학습에 필수품은 단연 자가용이리라. 그것 없이는 도시 문화를 탈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과연 자가용은 자연에 이르는 지름길인가 보다. 세 시간 남짓 ‘매혹의 드라이브 코스’를 타고서 차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굽이굽이 산속에 거대한 장관이 펼쳐진다. 콘도미니엄과 20층 호텔과 각종 유락 시설이 갖춰진 그곳을 일러 세칭 리조트라고 한다. 계곡 대신에 수영장이 들어서 있고, 저 푸른 초원은 그림 같은 골프 연습장이다. 몇 그루 안되는 나무들조차도 홀로 있지 않고 스피커를 힘겹게 매달고 있다. 그것은 진정 나무인가, 오디오인가. 호텔 꼭대기에서는 사이키 조명이 반짝반짝 빛나고, 노래방 건물에서는 독창과 합창이 뒤섞인 혼창을 내뿜는다. 여기에 우리의 자연이 있다.

‘우리의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자연 - 인력을 더하지 않은 본래의 상태’. 한글사전의 풀이다. 그 자연은 통상 산과 바다, 혹은 시골과 고향을 가리킨다. 산과 바다는 자연의 물리적 공간이요, 그 물리적 공간에 더한 인간의 구체적 삶이 시골과 고향을 이룬다. 그래서 자연 하면 삶의 원초적 공간이나 생활 양식을 연상하게 마련이다. 아무튼 자연은 고향집과도 같아 거기서 사람들은 나오고 다시 들어간다. 문자 그대로 인간의 요람이요 인간이 돌아갈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다. 자연의 탈을 쓴 문화다. 자연이 문화화한 공간일 따름이다. 이때 문화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문화 -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이런 문화에 힘입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리라. 그런데 문화란 것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자기의 고향인 자연마저도 집어삼키고서 대신 ‘자연’처럼 행세하게 된다. 인공 자연은 이렇게 해서 생성된 것으로, 그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인공 자연은 원래의 자연을 뺨치게 월등한 것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오늘의 여가나 레저 활동은 대개 그러한 반전의 경계에서 행해진다.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

돌이켜보면 자연을 향하는 길 자체가 인공 자연이었다. 고속도로는 사회적·자연적 지리의 상황에서 일탈한 조작된 공간이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한 자연은 먼 발치에 존재하고, 차를 모는 사람은 자연에서 동떨어진 곳에 존재한다. 운전하는 사람이나 승객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자연의 경관을 멀리 조망할 수 있지만, 자연을, 나무를, 풀잎을 만질 수 없다. 그에게 자연은 이미 현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면에 불과하다. ‘그림의 떡’이라는 비유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토종닭도, 별장도, 국립 공원도 모두 그림의 떡이다.

문제는 우리들이 인공 자연을 즐기면 즐길수록 자연에 대한 허위 욕구는 더욱 더 부추겨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첨단 기술에 힘입어 인공 자연이 자연보다 더 진짜 같은 원조로 지각되는 요즘 세상에는 엔트로피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고, 무엇이 더 탐닉할 만한, 진짜보다 월등한 가짜인가에 사람들의 흥미가 쏠리고 있다. 이는 분명히 병적인 현상이다. 세기 말의 ‘문화적 에이즈’라 부를 만하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나 같은 서울 사람은 그 표지판만 보면 반갑다. 실은 서울의 문화적 자장에서 한 발치도 벗어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왜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까. 별이 없어도 달이 없어도 서울은 늘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아파트와 백화점과 빌딩이 서울의 숲을 이룬다. 그 숲이 나의 고향이고 자연인 것이다. 이렇게 작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뭔가 찜찜하다. 어느 시인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신은 망했다.’(이갑수 <신은 망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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