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가라, 짝퉁이 좋다
  • 이재현 (문학 평론가) ()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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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을 공공연하게 선호하는 것은 ‘진짜 같은 가짜’보다는 ‘가짜 같은 가짜’를 들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사는 나라의 외교와 국방은 짝퉁이라 아쉽지만, 장신구만큼은 정말 짝퉁이
‘가짜 루이뷔통 가방은 본드 냄새가 심하고 금속 액세서리가 번쩍거리며, 짝퉁 구치 시계는 뒷면에 상품번호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지난주 언론에 배포된 ‘짝퉁’ 식별 요령 책자의 내용이라고 한다. 이 책자는 단속 공무원 교육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굳이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짝퉁을 택하겠다. 그게 더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전복적인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장신구는 설령 진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헤어스타일·패션 등등과 어울려 하나의 세트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므로 몸 전체를 진품으로 치장하기는 서민들로서는 불가능한 노릇이다. 거기에다 몸 자체까지 생각한다면 성형 수술 비용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몸매와 피부와 손발톱을 관리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시간과 돈은 엄청나다.

이에 반해 짝퉁은 한두 개쯤 장만하는 데 경제적으로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물론, 요즘 여대생들의 관용적 어법에서 보자면, ‘한두 개쯤’이라는 말은 짝퉁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진품에 붙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졸업반이 가까워지면 명품 구입을 위한 계를 한다고들 한다. 어쨌거나 짝퉁을 즐기는 일의 장점은 속을 염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나는 짝퉁을 진품인 줄 알고 거액을 들여 구입하고 나서 징징대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연민이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장신구에 명품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예술 작품이나 아주 오래된 악기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명품’이라는 말이 괜히 싫다. 친근한 느낌이 없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짝퉁’은 말 자체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어차피 내 인생, 혹은 거창하게 부풀려 말해서, 한국의 근현대사가 삼류고 짝퉁이고 키취(kitsch)니까 그런 느낌이 생기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

명품족은 명품을 통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를 꾀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들의 논리는 ‘명품은 오래 쓴다’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본다’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짝퉁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게다가 짝퉁은 질리면 쉽게 내던질 수 있다.

이탈리아 최고법원 “짝퉁 판매는 합법”

짝퉁을 공공연하게 선호하는 것은 ‘진짜 같은 가짜’보다는 ‘가짜 같은 가짜’를 들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겠다는 것이다. 애국심을 저버리지 않아도 되며 죄책감도 없는 것이다. 의도적인 짝퉁족은 늘 진품과 짝퉁 사이의 미학적 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패러디 문화를 즐기려고 한다.

서울 이태원을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이유가 다 짝퉁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조품을 만드는 기술은 여전히 이탈리아가 세계 최고지만, 가격이 아주 싸기 때문에 한국이 전세계 짝퉁 시장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이탈리아 최고법원은 노점상이 행인과 관광객을 상대로 모조품을 파는 행위는 합법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가짜는 진짜보다 값이 훨씬 싸야 하며 가짜임을 손쉽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짝퉁족의 표정 자체에서 진품과 짝퉁이 쉽게 식별되므로, 짝퉁족이 사회의 주류이자 다수가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탈리아 명품을 마음대로 복제해서 사고팔아도 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품족을 도덕적·법적으로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쪽으로 한국 사회가 다시 포맷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사는 나라의 외교와 국방은 짝퉁이라 아쉽지만, 장신구만큼은 정말 짝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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