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국민 품에 안겨라
  • 유승삼 (언론인) ()
  • 승인 2004.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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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문민 통제는 민간과 군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 군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위한 군 구조 개혁에 나선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한 것 이
미국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나 여론조사에서 단골로 상위를 차지하는 이는 링컨·루스벨트·워싱턴이다. 이들에 대한 높은 평가는 상식인의 눈으로 보아도 그러려니 싶다. 그러나 평가나 조사 때마다 늘 앞에 꼽히지만 그때마다 언뜻 이해가 안되는 대통령이 한 사람 있다.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다. 그는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부통령에서 대통령 직을 승계한 뒤 1948년 재임에 성공했다. 그는 그동안의 역대 대통령 종합 평가에서 4위, 5위, 7위 등등 대부분의 조사에서 10위 안에 들었다. 종합적으로는 케네디 대통령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과연 그의 장점은 무엇일까.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유엔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전쟁 중에 전격 해임했다. 당시의 한국 여론은 맥아더에게 동정적이었다. 과격한 사람들은 요즘도 그때 맥아더가 주장한 대로 만주를 폭격하고 원자탄을 썼더라면 통일이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맥아더는 바로 그런 호전적 생각으로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며 월권적 언행을 하다가 해임되었고, 그것이 트루먼의 손꼽히는 치적이 되었다.

분석가들은 트루먼이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군의 리더를 과감히 문책함으로써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전통을 확립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다음 대통령으로 거론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트루먼의 문민 통제 의지와 과단성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군을 세계 최강으로 키우면서 문민 통제의 전통도 그와 함께 강화해 왔다. 합참의장으로서 제1차 이라크 전쟁(페르시아 만 전쟁)을 지휘했던 콜린 파월은 누가 보아도 가장 두드러진 군부 인물이어서 국방장관에 최적격이었다. 그러나 국방장관은 민간인이어야 하며, 굳이 군 출신자를 임명하려면 전역한 지 10년이 지나야 한다는 법 규정 때문에 부시는 파월이 아니라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럼스펠드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장관뿐인가. 부장관·차관·차관보와 각 군 장관·차관·차관보도 모두 민간인 출신이다. 유럽과 일본도 문민 통제와 우위의 원칙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특히 군사 측면에서는 미국을 복사하다시피 했지만 ‘군에 대한 문민 통제’의 법과 제도만은 복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작 꼭 복사해야 할 것은 안한 셈이다. 그 원인이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 이 나라를 군사 정권이 줄곧 지배해온 데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군이 물고기라면 국민은 바다이다

성과는 두고 볼 일이나 노무현 정부가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위한 군 구조 개혁에 나선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한 것 이상 가는 결단이다. 그동안 민간과 군이 마치 별개 존재인 양 인식된 것부터가 실은 잘못이다. 병역이 국민의 의무로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어느 집안이나 한두 번은 군인 집안이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군의 바탕과 뿌리는 민간인 것이다.

따라서 ‘군에 대한 문민의 통제와 우위’가 군을 위축시킨다는 생각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란 다시 말하면 민간과 군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군사 정권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군을 민간과 분리해 맹목적인 충성 집단으로 만들려고 시도해 왔다. 그 결과 군은 본의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고, 피해도 보았다. 도매금으로 보수 집단, 호전적 집단으로 몰리곤 했던 것이 그 한 가지 보기이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국민은 군이 시대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기를 원한다. 또 군으로서도 그래야만 자긍심과 보람을 얻을 수 있다. 군의 내년도 예산 요구액은 전체 예산의 약 11%인 21조4천7백52억원에 이른다. 이런 막대한 예산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도 군은 국민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군에 대한 문민 통제는 군이 오히려 자청할 일이다.

마오쩌둥은 게릴라가 물고기라면 인민은 그 물고기가 살아갈 물이라고 했다. 어찌 게릴라의 경우뿐이겠는가. 우리 군이 물고기라면 국민은 그것이 뛰놀 넓디넓은 바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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