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는 왜곡된 욕망의 시선
  • 이성욱 문학 평론가 ()
  • 승인 2000.11.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적ㆍ사상적 흐름으로 보아 일본에 대한 공정하고 온당한 앎은, 우리의 향후 생존 문제까지 걸려 있기에 더욱더 간절한 일이 된다. 일본에 대한 왜곡된 신념은 친일파보다 위험하다.
일본이 우리보다 축구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십수 년 전부터 일본은 축구 한번 잘해 보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그들 특유의 과잉 비장이기는 하지만. 그때부터 청소년들을 축구 선진국에 보내는 유학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고, 축구 행정의 자강책을 연구하고 수행해 왔다. 그리하여 이즈음 축구판에서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도하 각 신문은 일본 축구가 이제 아시아 수준을 넘어섰다고 하니, 19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그토록 갈구해온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넘어서 유럽의 수준으로 나아간다는 뜻)가 축구에서도 실현되는 모양이다. 그런 일본에게 한국 축구가 이긴다면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돌아가야 할 보상을 앗는 일이니 말이다. 또 그런 일본 축구에 한국이 판판이 이기기를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도적의 심보와 다름없다(그러나 아직 우리 심리 깊숙한 곳에는 ‘일본은 아직 우리 밑인데’라는 문장이 돋음새김되어 있지 않은가).

일본 축구의 성장을 보고 있자니 난데없이 우리에게는 철천지 ‘원수’일 뿐인 이토 히로부미가 떠오른다. 메이지 유신 전후 일본은 대규모 사절단을 거듭해서 구미에 보냈다. 그 시절 사절단의 대표선수가 이토 히로부미이다. 그리고 그때 일본은 전 내각의 반 이상을 외국으로 장·단기 유학을 보내는 모험을 강행했다(나라를 비워놓고?). 그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목숨을 걸고’ 유학하고, ‘목숨을 걸고’ 구미의 근대를 낱낱이 배워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 근대에 대한 철저한 ‘모방 욕망’은 그때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17∼18세기부터 일본은 서양 문명을 주체적으로 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데 일본이 지금처럼 ‘잘살게’ 된 것은 오로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다. 몽골의 일본 정벌 실패도 운이 좋아서이고, 조선이나 중국보다 먼저 근대화할 수 있었던 것도 운 좋게 페리호가 일본에 먼저 닿아서이고, 패전 후의 경제 부흥도 하필 그때 한국전쟁이 터져 ‘한국 특수’라는 대운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등등. 그렇게 행운 도래의 계보를 만들다 보면 일본 축구의 성장도 거기에 들어가야 될 성싶다. 일본 행운론의 배후에는 대개 우리도 운이 좋았으면 지금의 일본 못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울러, 운이 좋아서 그렇지 일본의 실체는 별 것 아니라는 낮춰봄의 욕망이 항상 서식한다(하기야 세계가 모두 두려워하는 일본을 유독 우습게 아는 나라가 한국이라지 않는가). 그런 욕망은 대체로 일본에 대한 무의식적인 왜곡 욕망과 교배된다.

몇 주 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가 펴낸 일본학 연구 관련 총서 50권이 출판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다. 한데 흥미로운 대목은 그 기사의 제목이었다. ‘일본, 알아야 비판도 한다’. 이 제목을 보면 강조점이 일본에 대한 ‘앎’보다 ‘비판’에 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정확한 앎을 추구하기보다 비판하려는 욕망이 앞선다. 프랑스 관련 책에 대해서도 ‘프랑스, 알아야 비판도 한다’라고 할까.

이 왜곡 욕망은 일본에 대한 무지의 대중화를 불붙이는 선동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몇 년 전에 나온 <일본은 없다> 류의 책이 대표적인 선동 마이크이다. 문제는 그런 선동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일전에 나온 박유하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라는 책은 일본에 대한 온전한 앎과 비판을 위해서도 귀한 책이다. 하지만 그런 책의 진의는 격한 논법에 의해 금방 친일파 전향서로 평결되고, 싸구려 일본 애정서로 치부된다(월간 <인물과 사상> 11월호).

최근 학계의 화두 중 하나는 서양적인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한 패러다임 창출이고, 동아시아론이 그 중 하나이다. 한국·중국·일본의 근대에 대한 도저한 사유와 앎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회담 이후 일본은 북한에 장거리 미사일도 포기하라는(중국이나 러시아에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으면서), 주권 침해에 가까운 협박을 하고 있다. 정치적·사상적 흐름으로 보아 일본에 대한 공정하고 온당한 앎은, 우리의 향후 생존 문제까지 걸려 있기에 더욱더 간절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로막는 편견과 무지, 그로 인한 왜곡 등도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왜곡된 신념은 친일파보다 위험하다. 무지한 사람이 신념에 차서 왕성히 떠들고 일할수록 더욱 위험해지는 것이 세상사이기 때문이다.(dasaner@hanmail.net)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