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량의 가당찮은 '자기 존경'
  • 설호정 언론인 ()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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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무엇이기에? 국회의원이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한 국회의원'이 유권자를 향해 던지는 준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의문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패기있는' 국회의원 한 분을 보았으나 몹시 불쾌해졌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를 반성적으로 보는 시늉이라도 해보이는 국회의원 좀 없나?"




몇주 전에 있었던 한 텔레비전의 토론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거기 출연했던 한 국회의원이 여론의 입살에 심히 오르내리고 있다. 〈국회,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나?〉 이런 제목이었다. 당연히 여야 총무라는 이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불행히도', 그 심야에 어쩌다가 그 프로그램을 띄엄띄엄 보게 되었다. 다른 채널에서 더 좀 '재미'있게 해주었으면 단연코 나는 그 토론을 '띄엄띄엄'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그동안 토론 자리에 나와 하는 말에 진정성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대개 개그 수준의 딴전에서나 발견되어 왔기 때문이다. 질문보다는 준비한 답변을 피력하고자 하는 열정이 하도 강해서 사회자와 시청자의 인내심을 테스트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그 '한 국회의원'이 나를 그 채널에 붙들어 두었다. 성정이 가파른 사람인지 어쩐지 알 수 없으나, 토론의 중간쯤부터 이 분이 볼멘 소리를 사회자에게 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회자가 발언권을 공정하게 주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다. "아예 토론하지 말까요?" 그러더니 급기야는 "이런 식으로 토론을 진행하면요…"에 이르렀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말이 약해졌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말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토론이 토론답고 재미있으려면, 가장 정중한 언어로 가장 지독한 욕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논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가시 돋친 말 몇 마디 주고받고 토론장을 나가면 짐작컨대 한평생의 '웬수'가 될 위험성이 있으므로 토론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개 음전하다. 또 어쩌다 나오는 공격수는 대개 제 화를 못 이겨 참패를 면치 못하기 일쑤였다.


토론에 가장 부적절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돌이켜보면, 국회의원만큼 토론에 부적절한 사람들도 없는 듯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못 알아들은 시늉을 해서 보는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한 가지, 토론에 뽑혀 나오는 분들만 그런지 알 수 없는 일이나, 대개 언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듯해 길게 보아내기가 어려웠다. 그 지긋지긋한 '국민' 소리를 포함하여 '표'에 죽고 사는 인생임을 드러내는 의미 없는 말들이라니!


그 '한 국회의원'도 자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토론자로서 일품이라 할 수 없었다. 다만 화를 못 참아서 사회자에게 대드는 모양이 앞으로 무슨 일을 낼 것 같아 시청자의 가슴을 조이게 하는 효과는 내고 있었다. 발언 기회를 그토록 목말라하기에 그분의 발언에 특별히 주목하였지만, 별 얘기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의 소감이다. 게다가 내 눈에 그 토론의 사회자는 기회 균등 원칙에 꽤 충실했다.


그럭저럭 '민심'과는 상관없는 얘기에 시간을 바치다가 마침내 그 '한 국회의원'이 격분할 순간이 다가들었다. 방청석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었다. 한 젊은이가 국회의원에 대한 일반적인 '민심'의 평가를 덜 세련된 말로 쏟아냈다. 바로 그 말이 끝나자, 분연히라고밖에 할 수 없는 태도로 그 '한 국회의원'이 떨쳐 일어났다. '걸어다니는 입법 기관'이 분노하는 장면을 목도한 분들은 다 알 것이다. 무서운 질책이었다. 말의 요지는 국회의원을 모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꾸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 '한 국회의원'은 으름장을 놓는 듯한 말투를 즐겨 사용하는 분인 듯했다. 난감한 감정 폭발이었으나, 역설적으로 국회의원의 진심이 느껴졌다.


국회의원이 무엇이기에? 국회의원이 어디서 나왔기에? 국회의원이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그 '한 국회의원'의 유권자를 향한 준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나는 그런 의문을 이어 갔다. 그 분의 홈페이지는 그 이튿날로 폐쇄되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가당치 않게도 그런 식의 자기 존경심을 품고 있다면, 국회 또는 국회의원은 정말 가망 없는 존재이다.


'진실하고 패기 있는' 국회의원 한 분을 오랜만에 보았으나 몹시 불쾌했다. 반성적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시늉이라도 해 보이는 국회의원 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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