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이란 말도 있고 하니
  • 설호정 언론인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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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에서 자행된 역사 왜곡을 규탄·성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늘의 일본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오늘의 한국이 일본에게 무엇인지 좀더 냉정하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친일의 덫이 오늘에 가당키나 한가."




입이 근지러워서 아무래도 말을 해야 할까 보다. 말하고 본전 건지기 어려운 일인 줄은 알고 있다. 국민 감정이라는 것에 배치되니까.


털어놓건대, 이른바 일본 교과서 왜곡 사건에 대한 감회랄까가 그 일의 벽두에서부터 있어 왔다. 그러는 우리는? 하는 생각. 그러나 우리가 피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대일 감정을 덧들이게 하는 일이 닥치면 대개 이성의 소리는 깨끗이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다. 이 문제에 토를 달면 한순간에 거두절미하고 친일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나도 조심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히 줄여 이렇다. 일본 교과서 사건을 통해 우리 국사 교과서를 반성적으로 돌아보자는 평범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전 분열로 여겨질까 저어된다. 그러나 성숙한 쪽이 먼저 남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법이라지 않나.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최근에 공개한 새 역사 교과서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일본인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양하는 쪽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국심을 고취하자니 자연 국가와 민족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와 범죄를 부인하는 쪽으로 역사를 비틀어야 했을 것이다. 개탄할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친일 문제에 입 다문 우리 교과서는 문제 없나


그러나, 최근에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지수걸 교수가 우리 역사 교과서 또한 컨셉이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나섬으로써 역사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몹시 조심스러운 일이었겠건만, 역사학자로서 양심의 소리에 순응한 점이 돋보인다. 지교수의 주장은 대개 이렇게 요약되어도 좋을 듯하다. 현행 국정 국사 교과서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국가(조국)와 민족 또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주조로 삼아 씌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에 기술된 수없는 사실, 또는 그 해석과 의미 부여는 모두 그 변주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지교수의 지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우리 국사 교과서가 친일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이다. 우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친일 세력의 문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극소수 인격 파탄자로 기술했으며, 친일은 거의 일제의 공작이나 강압으로 마지못해 이루어졌다는 듯이 얼버무렸다고 한다. 친일 세력의 존재를 사실상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감싸고 변명해 주는, 어이없는 역사 왜곡이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장하는 자학사관 극복이 우리 교과서에서도 이렇게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한결같이 사회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는 과정으로 합리화한 점도 일본의 새 교과서와 닮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쿠데타를, '사회적으로는 자유만을 주장하면서 자제할 줄 모르는 일부 국민들의 과도한 욕구 분출로 시위가 계속되고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박정희가 한밤중에 총 들고 한강을 넘은 것은 불가피했다', 이런 논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두환과 김영삼 권력의 성립 배경에 대한 기술 또한 그와 유사한 혼란 상태에서 부득이했던 선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한국 근·현대사 기술에서 여전히 일본과 북한은 악마, 미국은 천사로 묘사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일제를 기술하는 데는 무자비·잔인무도·교활·광분·약탈·강탈 같은 감정적인 단어를 여과 없이 쓰고, 사회주의 운동이나 농민 운동을 기술할 때에는 사주·음모·획책·분열·교란·시위·선동 같은 단어들을 주로 동원해서 쓰는 몰역사적 관행도 여전하다고 한다.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에서 자행된 역사 왜곡을 뜨겁게 규탄하고 성토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같은 피해자인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연대해 끈질기게 재개정을 요구하는 압박 또한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우리를 돌아보는 냉정한 태도가 어느 때보다 요긴한 듯하다. 오늘의 일본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오늘의 한국이 일본에게 무엇이겠는지 더 좀 열을 내리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친일의 덫이 오늘에 가당키나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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