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수 감독의〈라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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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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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장현수

주연/최학락·김해곤·조준형

제작·기획/김방남


옌볜 처녀를 짝사랑하는 노총각 해곤(김해곤), 틈만 나면 베트남전에 참전한 삼촌 자랑으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학락(최학락), 유일한 대졸 출신으로 국내 뉴스는 믿을 수 없어 CNN 뉴스만 듣는 준형(조준형). 그들은 각기 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별 볼일 없는 택시 기사들이다.


셋은 걸핏하면 티격태격 다투지만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매일 어울려 다닌다. 답답한 현실에서 세 사람이 누리는 유일한 낙은 호프집에서 술 한잔 걸치며 농담을 주고받는 것. 셋의 술자리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쓸데없는 잡담 일색이지만, 그렇게나마 그들은 팍팍한 현실의 괴로움을 잊는다.


그러던 이들에게 각기 다른 고민거리가 생긴다. 해곤이 좋아하는 옌볜 처녀 미령은 빚 3백만원 때문에 칠십 노인에게 시집 가게 생겼고, 두 번이나 이혼한 준형의 형은 또 결혼하겠다며 준형에게 막무가내로 전셋집을 요구한다. 그리고 학락은 아무도 모르게 키워 온 열여덟 살 난 딸의 유학비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상무에게 빌려준 돈까지 모두 떼이고 절망에 빠진 세 사람. 고민 끝에 자신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찾는데….(11월3일 개봉 예정)


김영진 ★ 5개 중 4½
낮은 자세로 찍은 소시민의 얼굴




21세기 초의 소시민은 안녕하냐고? 물론 안녕하다. 영화 감독 장현수도 안녕하다. 그는 낮은 자세로 삶의 풍경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뭔가를 건져냈다. 그의 신작 〈라이방〉은 전쟁터 같은 한국 영화계의 경쟁 질서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라이방〉은 흥에 기초한 창작 공동체의 삶에서 쾌감을 만끽하며 만든 영화다.


장현수는 무명인 연극 배우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이 영화 속 인물과 거의 합쳐질 때까지 늘 같이 지내면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궁리해 마침내 영화로 찍었다. 지금까지 장현수가 만든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본 투 킬〉은 비늘처럼 번뜩이는 현실 묘사와 허구적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장르적 관성이 충돌하는 장기판 같은 영화였다. 그런 것들이 〈라이방〉에는 없다.


〈라이방〉은 홍상수의 영화가 나온 이후 한국 영화의 중요한 비평 어휘가 된 '일상'을 담고 있지만,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홍상수 영화에서처럼 지식인 계층이 아니다. 해곤·준형·학락은 별 볼일 없는 택시 운전사지만 역설적으로 지식인 계층보다 훨씬 더 많이 현재와 다른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모두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비상을 꿈꾸고 가슴 속에 판타지가 있는 인간들이다. 세 사람의 현실의 삶은 그렇게 비상하고 싶은 욕구가 꺾이는 좌절의 연속이다.


다른 삶으로 비상하고 싶은 욕구와 그 욕구가 일상적 좌절과 부딪치고 마는 거듭되는 순환 과정이 〈라이방〉의 극적 리듬의 고저를 만든다. 영화 초반에 허름한 맥주집에서 세 주인공이 하릴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카메라는 수평으로 돌면서 서서히 무심한 듯 그들을 잡았다가 지나치기를 반복한다. 세 사람의 마음의 파장에 무심한 듯 돌아가는 그 선풍기의 움직임, 끊임없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등장 인물의 마음과 대구를 이루는 수평적 초연함이 연민과 유머를 한꺼번에 이끌어내는 것이다.


어쩌면 〈라이방〉은 〈게임의 법칙〉을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만든, 기름기를 뺀 응시가 아닐까. 〈게임의 법칙〉에서 주인공 용대는 틈만 나면 사이판에 가서 폼 나게 살아보겠다고 말한다. 그곳은 폼 나는 곳일지도 모르지만 애초부터 용대가 갈 수 없었던 곳이다. 〈라이방〉에 등장하는 인물이 거론하는 베트남은 사이판과 같은 낙원은 아니다. 또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장현수는 〈라이방〉 초반의 선풍기 시점처럼, 이제 수직으로 상승하려는 헛된 몸짓이 아니라 수평으로 훑어보면서 착지할 공간을 찾아냈다. 21세기 초 한국 영화는 안녕한 소시민의 얼굴을 얻었다.


심영섭 ★ 5개 중 4½
꺽인 남성성 높아진 예술성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IMF 이후 '옴매 기죽어'를 연발하는 쇠락한 남자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는 유행이 영화계에 번지고 있다. 양지 부족인 남성들을 암흑가라는 음지의 장소로 옮겨서라도, 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라도 수컷으로서의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몸부림을 쳐왔다. 그러나 최근 개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라이방〉에는 〈친구〉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달리 의리와 용기라는 방패막이마저 내던지고 기본적인 체면마저 구겨버린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라이방〉은 우리 사회 남성성의 판타지를 부추기는 액션물을 만들었던 감독이 스스로의 손으로 그 영웅 신화를 해체해 버리며 만든 영화여서 더욱 흥미롭다. 〈걸어서 하늘까지〉와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던 장현수 감독은 한때 충무로의 기린아였다. 하지만 〈남자의 향기〉와 〈본 투 킬〉에서 폭력과 멜로의 어긋난 만남을 주선한 탓에 패장이 되었다. 이러한 질곡을 거쳐 초심으로 돌아온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에서는 알싸한 남성 판타지 대신 생활에 절어 버린 사내들의 땀냄새가 물씬 풍긴다.


미혼부가 된 학락이나 가족 분란에 시달리는 준형, 옌볜 처녀에게 퇴짜 맞는 해곤 모두 우리 가족 제도와 사회 제도의 피해자이다. 옌볜 처녀가 칠십 노인에게 시집 간다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꼬인 삶의 일부는 자본주의가 판치는 한국의 어떤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베트남이라는 공간은 참전 용사라는 이미지와 결부된 남성성 회복의 장소요, 선글라스 '레이 밴'처럼 한반도라는 공동 구역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그늘의 장소이다.


만약 〈라이방〉이 베트남을 단지 꿈의 장소로 설정해 놓았다면, 그것은 전작 〈게임의 규칙〉처럼 지독한 필름 느와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식적인 사회 비판이나 부박한 칼질과 액션의 유혹을 우회하여 장현수가 택한 것은 한판의 해프닝 같은 살인 소동을 뒤로한 해피 엔딩 장소로서의 베트남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따뜻한 인간 관계에 대한 신뢰만이 그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라이방〉의 미덕은 여기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본질을 잡아내는 성찰의 힘 대신 질펀한 유머와 넉살로 세파를 헤쳐가는 서민들의 삶의 공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질기고 생생한 생명력을 보여준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 이래 처음이 아닌가 싶다. 비교적 저예산인 10억원을 들인 〈라이방〉은 한국의 대안 영화가 일정한 질을 확보하면서도 관객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스타 시스템과 장르 영화에 저항한 장현수는 이번에는 가장 솔직한 '체험! 삶의 현장'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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