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씨가 ‘검증’받을 일
  • 설호정(언론인) ()
  • 승인 200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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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하다. 아니, 이인제씨가 지난 3월 하순 김중권 후보가 사퇴 한 후 집안에서 숙고라는 걸 한 끝에 돌연 내놓은 득표 ‘아이디어’가 도무지 소화가 안된다는 말이 솔직하겠다.




김대중씨를 끝으로 색깔론이라는 가당찮은 단어를 좀 안 듣고도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나 보다 했더니 느닷없고도 엉뚱한 데서 다시 이 말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이인제씨는 거듭해서 언론에다 대고 색깔론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럼 빛깔론인 모양이다.


우선, 정치적 목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실낱 같으나마 상대적 개혁성이랄까를 평가받아 온 정당의 내부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움틀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요컨대, 지난 수십 년 상대방 정당과 극우적인 언론으로부터 그토록 끈질기게 당하고도 모자라 자기들 집안 선거에서 ‘이념 검증’이라는 걸 하자는 후보가 나선 것은 근본적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정체성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더 쳇기가 가시지를 않는다. 노골적으로 ‘사상 검증’이라고는 안했으니 가상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인제씨가 하자고 드는 이념 검증의 내용이라는 것이 보잘것없는 것임은 다들 알 것이다. 또 그 일에 대한 ‘검증’이건 ‘심판’이건, 그건 지금까지 표의 향방이 이미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켜지지 않는 것이 노무현씨 장인의 좌익 전력에 관한 이인제씨의 폭로와 의미 부여이다.



인천 경선에서 이인제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뽑는 것이 아니고 70만 대군의 통수권자를 뽑는 것이므로, 대통령의 영부인감이 좌익 활동을 한 사람의 딸이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포항 경선에서는, 노무현씨 때문에 가슴까지 아팠다며, 또 자기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장인을 둔 사람은 미국의 이혼녀와 결혼하고자 왕위를 포기한 영국의 에드워드 8세처럼 행동하라고 충고했다. ‘인간적으로’ 동정하지만, 그런 장인 둔 죄로 너는 그만둬라, 그런 얘기인 셈이다.



이쯤 되면 우선 이인제씨가 그야말로 인간적으로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뼈아픈 현대사를 탐색한 바탕 위에 오늘이 어떤 시대인지를 통찰하고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다.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청년이 그런 ‘흠’있는 집안의 여성과 교제하여 만난을 무릅쓰고 혼인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격을 받을 일은 아니다. 그 젊은 나이에 벌써 그 여성이 자신의 전도에 장애가 될까 저어하여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얼음같이 냉정했다는 소리는 들었겠으나 인간적으로는 평점이 낮을 수밖에 없다.



정견은 없고 비방만 있는 경선, 규칙 다시 세워야



그리고 이인제씨는, 불행한 이념 분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가정이 연좌에 묶여 고통 속에 일그러진 나날을 보내야 했는지 모른다고 해도 문제요, 알면서 저런다면 더더욱 문제다. 이인제씨가 반대한다고 한 연좌제는 이런 거 말고 다른 무엇이란 말일까? 더구나 오늘 남북이 어떤 변화와 화해의 몸짓에 열중해 있는지 뻔히 보면서 이런다면 그 사람의 남북관은 무엇이며, 이 시점에 과연 대통령을 할 만한 사람이기나 한지 이거야말로 ‘검증’이 필요하다 하겠다.



아무리 다급해도 할 말과 안 할 말은 있는 법이다. 이 문제는 국민 일반의 정서에 배치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붉다고 모략하면 얼결에 반대편의 손을 들어준 국민이라 할지라도 죄없이 고통 받은 부인의 문제를 끄집어내어 이른바 영부인 자질이 있네 없네 하는 데에는 역심이 생긴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당은 아마도 이런 선거 하자고 국민 경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이 심판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음모론이라는 데에 놀라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듯하다. 손을 쓰고 경고하면 당장에 음모가 있다고 할지 모를 일이나, 그래도 이대로는 곤란하다.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는 소리는 모기 소리만 하고, 헐뜯고 방어하느라고 목청이 터지고 있으니 시간이 아깝다. 이제라도 무슨 규칙이 있어야 민주당이 그다지도 자랑스러워하는 이 경선의 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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