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즐기는 잔치를 위해
  • 이성욱 (문학 평론가) (dasaner@hanmail.net)
  • 승인 2002.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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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마이니치 신분>은 이렇게 전한다. ‘한국, 월드컵 열기 최고조’. 그런데 정작 개최지의 한쪽 당사자인 자신들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애매한 수사로 말꼬리를 흐린다. 월드컵에 대한 일본의 분위기는 예상을 한참이나 넘어 계속 미지근했다. 보다 못한 일왕(日王)까지 나섰다.





축구 국제 경기에는 한번도 ‘친히 관람’하는 일이 없던 일왕이 지난번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에는 ‘용안’까지 드러내는 파격을 저지른 것이다. 일왕에 대한 충성과 감읍을 일가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일본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일왕이 월드컵에 관심을 보인다는 제스처는 곧 일본 신민은 무조건 월드컵에 열광해야 한다는 ‘어명’에 가깝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천황 폐하’의 어명조차 별무신통이다.



5월31일자 <요미우리 신분>의 사설은 일본과 달리 높은 월드컵 분위기에 부유하는 한국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전부 열기에 들떠 있다’고 묘사한다. 이어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에 지방자치제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다시 말해 중대한 ‘이벤트’를 한몫에 해 나가는 것은 한국인들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과거 군사 독재 시기와 달리 민주주의를 이룩한 한국에서 정부가 기치를 들고 나아가니 전국민이 거기에 순종스럽게 따라가는 일사불란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 일본의 각성을 요청한다.



그런데 일본 신문의 이런 묘사는 기실 칭찬이 아니라 욕이라고 보아야 한다. 먼저 <요미우리 신분>이 일본 우파의 선봉장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구 어디서나 그렇지만, 우파의 핵심 강령은 국가주의이다. 국가(실은 지배 계급)가 정하고 국가가 추진하는 일에는 당연히 전국민적 동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순간만은 ‘열심 당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데, 심지어 우파의 태양인 ‘천황 폐하’까지 월드컵 분위기 띄우기에 ‘옥체’를 내던지시는데,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내고 있으니, 우파 신문 요미우리로서는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눈으로 보자면, 대통령 이하 전공무원, 전국민이 총동원되고, 노점상을 비롯해 거리의 이물질들은 말끔히 ‘소독’되며, 그래도 별 말이 없는 한국, 월드컵 ‘성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의 생존권도 당연히 유예되어야 한다고 한쪽 신문에서 바람 잡고 다른 신문에서는 입을 막는 여론의 ‘퍽치기’에도 신지무의(信之無疑·꼭 믿어 의심치 않음)하고 있는 사람들, 요미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것이다.



국가적 목표를 위해 전국민이 동원되는 체제를 ‘총력전(Total War)’ 체제라 부른다. 이 체제는 국민이라 지정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 취향, 행동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지탱된다. 그런데 총력전, 혹은 총동원 체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쪽은 일본이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배운 총동원 체제는 20세기 내내 한국 사회의 주문(呪文)이 되어 왔고, 드디어 21세기 문턱까지 슬그머니 넘어와 오늘 우리의 잔치를 좌우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총력전 체제를 가르쳐 준 일본에서는 정작 그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순종적인 동원 체제, 비웃음만 살 뿐



월드컵 성공은 대통령이 개막사에서 발언한 것처럼 세계 평화에 얼마나 기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직시해야 할 일은 평화 기원이 개최국 ‘밖’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잔치를 벌인 개최국 ‘안’에도 그 평화는 하나의 혜택으로 주어져야 한다. 노점상이 뒷골목으로 쫓겨난 ‘소독’된 거리, 월드컵 기간의 노동 쟁의를 반역으로 내모는 일, 이 모두는 평화의 이름으로 숨은 폭력을 행사하는, 그러므로 예의 개막사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잔치는 즐기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큰 잔치일수록 그 동네의 ‘이물질’은 모두 모여들고, 그래서 시끄럽기 마련이다. 그런 것이 원래 잔치이고 카니발이다. 월드컵을 ‘위해’ 일사불란함과 순종적인 동원 체제로 잘 정비된 한국. 외국인이 그것을 보고 한국을 찬송하리라 예상한다면 참으로 순진한 착각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그런 모습을 오히려 비웃는다.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그들은 그보다, 월드컵‘임에도 불구하고’ 파업과 시위 혹은 이물질의 오물거림이 허용되는 한국을 훨씬 역동적이고 가능성 있는 사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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