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민이 본 제1세계 두 얼굴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노자 교수의 북유럽 견문록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지난해 러시아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으로 귀화한 박노자 교수(오슬로 대학·한국학)가 최근 노르웨이에서 북유럽 견문록을 보내왔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한겨레신문사 펴냄). 노르웨이 민중운동이 걸어온 길, 북유럽에 뿌리 내린 사회민주주의의 명암, 국제적 착취 체제의 구성 등을 들여다본 이 책은, 박교수가 지난해 펴낸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한 ‘바깥의 사유’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이번 책은 세계 시민의 시각으로 제1 세계의 안팎을 관찰한 ‘당신들의 선진국’이다. 노르웨이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실현되고 있는 ‘만민 평등주의’나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시내 버스 기사에게서 ‘노동 중심 사회’를 발견하고 놀랄 때, 박교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혹은 러시아인이다.


하지만 박교수의 북유럽 탐험이 북유럽 예찬은 아니다. 자전거와 대중 교통 수단을 즐겨 사용하는 시민들에게서 ‘잘 쓰고, 제대로 쓰는’ 구두쇠 정신을 만나고, 사생활과 외출이 보장되는 감옥에서 인권의 가장 높은 수준을 긍정하면서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는’ 북유럽 사회의 이면을 파헤친다. 예컨대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제3 세계에 대한 착취가 없었다면, 북유럽의 풍요와 안락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북유럽에는 아직도 서양(백인) 중심주의의 그늘이 엄연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박교수의 제1 세계 탐험의 도착지는 ‘반폭력·평화’이다. 박교수의 주적(主敵)은 사회화·제도화한 폭력이다. 그러니, 박교수의 북유럽 탐험은 도착지가 있는 여정이 아니다. 반폭력·평화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인류의 마지막 기획’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함께 이번 책은 한국 지식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고종석씨가 언급했듯이, 한국인들은 ‘내부의 외부’이자 ‘외부의 내부’인 박노자 교수의 글을 통해 세계 시민으로서의 지식인상을 거의 처음으로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