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
  • 정준영(동덕여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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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옷이 먼저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21세기를 살아갈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한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너무 뒤늦게 태어났다. 2000년대는 순진한 원칙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친절한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옷이다.






2000년대는 수많은 옷의 의미가 사람들을 어지럽히는 시대이다. 온갖 유행 스타일이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옷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현상이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옷에 특별한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려면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골라 입을 수 있을 만큼 옷이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생산되어야 한다. 생산된 옷을 쉽게 사 입을 수 있을 만큼 사회 성원들의 전반적인 경제 능력이 향상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서양 사회에서 상류층 대상의 사치품에 의존하던 소비 시장이 대중 시장으로 전환한 것은 대략 18세기부터였다. 산업혁명에 힘입어 상품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소비 시장도 넓게 확대된 것이다. 더불어 상품을 통해 취향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특히 20세기 초반 이후 노동 계급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상품을 통해 취향을 표현하는 현상이 사회 전부문으로 확산되어 갔다.



캐주얼 복장 근무=IT 강국=대한민국?



옷이 입는 사람의 취향을 표현하게 되면서 옷에는 특정한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흔히 생각하듯이 사람들이 순수한 개인적 판단에 의해서만 옷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유사한 취향을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상품을 고를 때도 비슷한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품을 통해 취향을 표출하는 과정이 정착하면서 역의 과정이 발전하게 된다. 즉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 집단이 선호하는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사례가 생겨난다. 옷에 국한해서 얘기해 보자면,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특정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단계에 오면 드디어 옷이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옷에 구속된다.


이제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인지 옷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헷갈리는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여러 일간 신문 경제면에 통신기업 KTF의 이경준 사장이 매주 수요일을 청바지 입는 날로 정했다는 소식이 크게 다루어졌다. 복장 변화를 통해 임직원들의 사고 혁신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벤처 기업이 호황일 때 캐주얼 복장 유행이 기업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왔으므로 KTF의 이번 정책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IT 거품이 붕괴하면서 미국 회사들이 전통적인 정장 복장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KTF의 조처가 여전히 이채롭게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에서 아직도 청바지 입기를 고집하는 것은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위상을 반영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따라서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IT 산업의 부침에 따라 캐주얼 의류 제조업체 주식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KTF 사장의 이번 결정은 인간이 옷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인간을 규정하는 시대에 발맞춘 의미 있는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의식이 자유로운 옷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옷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를 만들어 가겠다니! 지시에 의해 사고를 혁신하겠다는 발상에까지 굳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생각까지 바뀔 만큼 인간이 왜소해진 사회는 여전히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스타의 모습을 본떠 성형 수술을 하는 등 곳곳에서 인간이 객체가 되는 현상이 만연하는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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