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냄새를 싫어한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2.12.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콘스탄스 클라센 외 지음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올해 인문 교양 부문 출판 동향에서 드러난 가장 특징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로 이른바 미시사 관련 도서가 본격 출간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시사저널> 제686호 ‘올해의 책’ 기사 참조). 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구라’의 시대는 가고 ‘수다’의 시대가 왔다고들도 하지만, 어쨌든 일상과 문화의 특정 주제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책들이 정치 경제 중심의 거대 담론을 서가 한켠으로 비켜나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미시사 관련 도서는 대개 두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첫째는, 특정 주제에 대한 박식의 단순한 나열을 미시사로 과대 포장한 경우, 둘째는 ‘미시’보다는 ‘사’에 치중하느라 결국은 거시사나 진배없이 되어버린 경우이다. 사례는 풍부한데 맥락이 실종했거나, 맥락은 뚜렷한데 사례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콘스탄스 클라센 등 캐나다 학자 3명의 공동 연구 결과로 나온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김진옥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는 사례가 풍부해서 읽는 재미가 진진하고, 맥락이 튼실해서 이론적 흥미를 자극한다.



모두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제1,2부는 사례 위주이다. 현대 서양 사회의 시각 중심주의에 억눌려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전근대 기독교 세계의 후각 문화를 발굴해 냄으로써 냄새(혹은 향기)의 복권을 꾀하고(1부), 비서양 문화권(주로 남미 대륙)에서 냄새가 갖는 다양한 역할-치료 주술 사냥 유혹 환각-을 소개함으로써 원주민 사회의 풍속사를 재현한다(2부). 제3부는 이 책의 백미이다. 1,2부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냄새와,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어떤 변천을 겪어왔는가를 섭렵한 토대 위에서 현대 사회의 후각 상징 체계를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양 사회가 계급을 구분하는 진짜 비밀은 ‘하층 계급은 냄새가 난다’는 말로 요약된다는 조지 오웰의 통찰을 빌려 육체적인 것으로 오해되었던 냄새의 정치적 진실을 밝혀내는가 하면, 사람의 체취를 차단하는 각종 ‘상업화한 냄새’를 통해서도 ‘무취’와 권력의 상호 관계를 파헤친다. ‘땀에 전 노동자나 향료 냄새를 풍기는 귀족이 아니라 냄새가 없고 말쑥한 사업가’가 현대적 권력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후각적 침묵의 시대에 냄새의 작동 메커니즘이 궁금한 독자라면 건질 것이 많은 책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