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정치의 ‘원조 교제’ 캐기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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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좋은 친구들>을 감독한 마틴 스콜세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현대 영화의 거장이다. 뉴욕의 범죄 세계를 주무대로 하는 스콜세지의 영화는 폭력과 범죄의 길을 택한 군상의 허탈한 그림자를 보여준다. 위대한 성공도 없고, 홍콩 누아르의 영웅들처럼 장렬하게 산화하거나 하는 일도 없다.




마틴 스콜세지는 ‘비열한’ 범죄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그려낸다. <갱스 오브 뉴욕>은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19세기 뉴욕의 범죄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낸다. 미국을 지배하는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신화적 영웅이 왜 초라하고 이기적인 양아치로 전락했는지를 그려낸다.


하류층이 부대끼는 뉴욕의 파이브 포인츠. 뉴욕 토박이들의 대장인 빌 더 부처(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조직 데드 래빗 파의 보스인 프리스트(리암 니슨)를 죽이고 패권을 잡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복수를 다짐한다.


19세기 뉴욕의 범죄 세계 리얼하게 그려내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여전히 빌이 장악하고 있는 파이브 포인츠로 돌아온다. 복수를 꿈꾸는 암스테르담은 빌의 수하에 들어가 총애를 받게 된다. 암스테르담은 빌의 정부였던 제니 에버딘(카메론 디아즈)과 사랑에 빠지고, 부와 권력에 취하며 목적을 잃어버린다.
피비린내 나는 결투가 시작되기 전, 빌과 프리스트는 말한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싸움’이라고. 동물이 우두머리를 정하는 법칙처럼, 거리의 지배자는 ‘폭력’으로 결정된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존재 증명을 위하여 폭력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질된다. 100년 전에는 그들도 이민자였지만, 이제 토박이들은 새로운 이민자를 경멸한다. 이민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조직은, 소수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폭력 집단이 되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걸작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비견될 만하다. 진짜 미국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정계로 진출하는 <원스 어펀…>과 달리 빌은 정치에 뜻을 두지 않는다. 지금도 칼을 들고 돼지고기를 자르는 빌은 ‘폭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고대의 인간형이다. 그러나 뉴욕의 정치가들은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선량한 시민을 분노로 무장시켜 남북전쟁으로 내모는 현대의 인간형이다. <갱스 오브 뉴욕>은 실제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빌이 아니라 정치가와 상류 계급이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단순한 갱 영화가 아니다. <갱스 오브 뉴욕>은 근대 국가 형성과 함께 정치와 범죄 조직이 결합해 거대한 폭력의 지배 체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폭력의 본질과 역사를 <갱스 오브 뉴욕>에서 만날 수 있다(2월28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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