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쿠나, 양복쟁이 룸펜이여”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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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직 지음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
1934년 작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를 앞세워 하루 동안 주유 경성(周遊 京城)하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에, 박태원만큼 문학사적 명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훨씬 다재다능했던 안석주 역시 경성을 거닐었다. 그리곤 소설 대신 ‘흐트러진 글과 그림’이라는 뜻의 ‘만문만화(漫文漫畵)’를 남겼다. 이를 통해 안석주는 소설가 구보씨가 미처 보지 못했던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시시콜콜한 세태와 풍속을 실감 나게 전해 준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가 그랬던 것처럼, 일상사의 기미를 절묘하게 포착해낸 그의 만문만화는 신랄하지만 유쾌하다. 가령, 요즘의 압구정동 야타족을 연상시키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자. ‘요사이 보이는 게 지랄밖에 없지만 자동차 드라이브가 대유행이다. 탕남탕녀가 발광하다 못해 남산으로 용산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러브씬을 연출하는 것은 제딴에는 흥겹겠지만 자동차 운전수의 핸들 쥔 손이 어찌하여 부르르 떨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학을 나오고도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라면 70년 전의 ‘양복쟁이 룸펜’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다. ‘아침에 뜨는 해도 보기 싫고, 밤에 뜨는 달도 보기 싫고, 모든 색채 모든 움직이는 물체,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다 듣기 싫고, 도대체 사는 것이 싫다. 어쨌든 그 날의 그 해는 지나버려야 할 터이지만, 돈 십전만 있으면 찻집이 좋다고 들어가나 커피 한잔만 먹고 웬종일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길로 헤맨다. 이래서 양복쟁이 룸펜이 된다.’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는 1930년대 신문에 실린 안석주의 만문만화를 저자(도쿄 외국어대학 객원교수)의 해설과 함께 모은 책이다. ‘소비 중심의 근대 도시 경성’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등장’ ‘시대의 유행, 유행의 시대’ ‘새로운 결혼 문화와 가족 관계’ ‘만문만화와 당대의 사람들’ ‘근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누어 이제 막 현대의 문턱을 넘어선 한국 사회의 풍속도를 담았는데, 위에서 보듯 이른바 ‘모던’에 비판의 칼끝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모던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던의 시발점이었다. 비판할 수 있지만 막을 수는 없었던 모던의 원초적 경험을 ‘삐딱하게’ 꼬집는 안석주의 필봉이 2003년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통쾌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30년대의 잡지들에 게재된 글에서 현대성의 근거를 찾아낸 <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라>(1999년)를 같이 읽으면 금상첨화. 옛 표기법을 그대로 살린 인용문이 독자에 따라서는 인터넷 문장보다 더 정겨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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