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여 권력자가 되어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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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하는 일을 맡는 여성들은 ‘치마 두른 남성’이 되기 십상이다. 역설적으로 남성들의 마초성에 진저리를 치는 여성들이라면 그럴 위험성이 더 크다. 여성 감독이 영화 촬영을 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섹스 이즈 코미디>(연출 카트린 브레야)는, 의식을 했건 안했건 그 권한을 지닌 자가 누리는 은밀한 기쁨에 관한 영화이다. 하지만 남성들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허용되는 권력의 단맛에 대해 사회가 자기 성찰이 없을 때, 그녀의 가학적 기쁨 또한 무죄다.

영화는 체모와 성기 노출로 시끌벅적했던 화제작 <팻 걸>의 정사 장면이 주요 모티브이다. 외국의 한 잡지는 ‘<팻 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렇게 읽는다면 작품은 한층 더 발칙하게 다가온다.

우선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이력이 그런 독법을 가능케 한다. 그는 열일곱 살에 이미 ‘18세 이하 판매 금지’ 소설 <쉬운 남자>를 써낸 문제 작가다. 1970년대 중반 영화로 경계를 넓힌 그녀는,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남성의 얼굴을 한 검열’과 맞서 싸우면서 여자의 성, 여자가 느끼는 성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 팻 걸 > 찍는 과정을 찍은 영화처럼 연출

그녀는 최신작 < 섹스 이즈 코미디 >를, 자신의 화제작 < 팻 걸 >을 찍는 과정을 찍은 영화로 보이도록 장난을 쳤다. <섹스 이즈 코미디>의 여자 주인공 록산느 메스키다가 바로 <팻 걸>의 언니 역할을 맡았던 데다가, 남성이 뒤에서 덮치는 <팻 걸>의 침대 위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감독 잔느(안느 파릴로)는, 매력적인 남자 배우와 앳된 여배우와 함께 영화를 찍고 있다. 남자 배우(그레그와르 콜렝)와 여배우(록산느 메스키다)는 서로 호흡이 맞지 않는다. 화학 반응이 일어나야 하는 키스 장면이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자, 결정적인 섹스 장면 촬영을 앞두고 감독 잔느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옷은 모두 벗어도 양말은 못 벗겠다는 남자 배우, 자신의 남자 친구보다도 키스를 못하는 멍청이라고 그를 무시하는 여자 배우. 하지만 감독은 유독 남자 배우에게 혹독하게 군다. 촬영장의 스태프는 감독을 말린다. “얼굴만 보고 뽑아놓고, 너무 그러지 말아요. 배우에게 가혹한 일이에요.”

불만투성이인 남자 배우는, 매력적인 마초답게 자신이 감독을 설득하고 자신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감독은 말려드는 척 그를 구슬린다. 때론 추어주고 때론 협박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며 자신의 영화에 집중한다. 작업할 때 그는 욕심 많고 수완 좋은 독재자 모습을 하고 있다.

급기야 결정적인 장면의 촬영이 진행되는 날, 감독은 남자 배우에게 가짜 성기를 달도록 한다. 소품 박스 안에 그득한 갖가지 크기의 성기들. 스태프는 배우의 진짜 성기가 휘어 모형을 다시 손봐야 한다고 보고하고, 질겁하던 남자 배우는 극구 뻗대던 태도와는 달리 가장 큼직한 성기를 골라 달고 촬영장을 활보한다.

<섹스 이즈 코미디>는 제목대로 ‘섹스는 코미디’라고 주장하거나,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섹스 장면이 실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통해 빚어진다고 말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주장보다는 고백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키득대는 관객에게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내가 평생 치르고 있는 전투의 동력은, 실은 권력욕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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