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을 꿈꾸는 지붕 위의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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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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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민간 주도 시민태양광발전소 첫선
시민들이 전기를 만들어 팔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5월14일 에너지대안센터는. 시민운동 단체 ‘지구를 위한 시민행동’ 앞마당(서울 부암동)에 총용량 3㎾짜리 시민태양광발전소(시민발전소)를 세운 뒤, 전기를 직접 생산·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일본 같은 나라에서 이같은 ‘전기 반역’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시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은 “앞으로 수도권에 시민발전소를 4,5기 더 세울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원자력 전기나 화석 연료 전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 활발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발전소는 겉으로 보기에 다른 태양광 발전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85W짜리 검푸른 태양 건전지 36장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태양광 모듈에서 만들어진 전기도 다른 전기처럼 인버터(직류 전력을 교류 전력으로 바꾸는 장치)를 통해 지구를위한시민행동 사무실에 공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니 시민발전소는 낙도 등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들과 여러 모로 달랐다. 우선 정부로부터 한푼의 지원금도 받지 않았다. 건설비 2천9백만원을 모두 농민·학생·교수 등으로 구성된 ‘원자력을 뛰어넘으려는 35명’이 모았다. 계기가 있었다.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이필렬 교수(방송통신대) 팀이 독일 남부 보덴 호수 주변에 있는 시민 에너지 기업 ‘졸라 콤플렉스’를 돌아보고 온 것은 지난해 6월. 졸라 콤플렉스의 목표는 거창했다. 2030년까지 보덴 호수 주변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얻겠다는 것이었다. 졸라 콤플렉스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태양 에너지·풍력·수력·지열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최대한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발 가능한 잠재량은 현재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전기와 열의 절반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100% 에너지 전환을 이루려면 주민들이 30년간 매년 2%씩 전력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고갈될 위험이 없고, 현세대가 아무리 사용해도 미래 세대가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고, 석유 확보를 위한 갈등이나 전쟁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온 뒤 이교수 팀은 국내에서도 ‘전기 반역’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을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궁리)에다 이렇게 기록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전기 반역을 일으킬 차례가 아닐까. 한국전력의 전기 독점에 대항해서 어느 작은 마을 하나에서라도 전력 자립 운동과 재생가능에너지 확산 운동이 일어난다면 우리 나라의 에너지 미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밝아질 텐데.’ 그러나 반역은 없었다. 지붕·벽·베란다·옥상·주차장·전철역 등에 태양광 전지와 집열판만 설치하면 되는데, 시도하는 시민이 거의 없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따른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이다. 결국 이교수 등은 자신들이 직접 반역을 일으키기로 했다. 시민의 도움을 받아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멍석을 깔아준 것은 산업자원부(산자부)였다. 산자부는 지난해 대체 에너지 발전 차액 보전 및 설치 보조금 지원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내용은 특별했다. (민간이) 태양광·풍력·소(小)수력·매립 가스·폐기물 소각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면, 정부가 생산 가격과 전력 시장에서 거래되는 판매 가격과의 차액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전기료도 파격적이었다. 태양광 발전은 당시 평균 전기료(48.80원/㎾h)의 15배인 7백16.40원이었으며, 풍력은 2.2배인 1백7.66원이었다.

그렇다고 시민발전소가 큰돈을 벌 것 같지는 않다. 월평균 발전량이 약 300㎾h(절약한다면 3가구가 쓸 수 있는 양)니까, 한 달 수입이라고 해야 고작 21만5천원(300×716.40)에 불과하다. 1년이면 2백58만원을 버니까, 초기 투자비를 건지는 데만도 꼬박 11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제 지구에 남은 석유가 1조 배럴 남짓이고, 이를 현재 수준의 연간 생산량으로 나눌 경우 40년이 지나면 바닥이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교적 풍부하다는 천연 가스나 석탄도 각각 60∼100년 뒤에 ‘씨가 마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석유 소비 규모가 하루 2백20만 배럴로 세계 6위이고, 석유 수입 규모가 세계 3위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핵폐기물을 양산하는 원자로를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한국의 에너지 문제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더 큰 문제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석유 공급이 끊긴다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까. 오랫동안 에너지 문제를 연구해온 윤순진 교수(서울시립대·행정학)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한국의) 에너지 위기는 일상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윤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위기를 풀 방법은 단 한 가지, 재생가능에너지(윤교수는 석유를 대체한다는 의미의 대체 에너지 대신 이 말을 쓰자고 주장한다)를 확대해 풀어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한반도에는 태양·풍력·조력 에너지가 풍부하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를 활용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생산 원가가 비싸고,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2000년 현재 한국의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1차 에너지 공급에서 1.3%밖에 안된다. 그나마 대부분 산업 폐기물과 도시 쓰레기를 태울 때 나오는 에너지여서, 실제 태양 에너지나 풍력 등을 이용한 재생가능에너지는 0.2%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도 최근 들어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하다. 지난해 산자부는 2010년까지 3㎾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갖춘 주택 3만호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미국은 2010년까지 100만 호를, 독일은 2004년까지 10만 호를 건설할 계획이다). 그리고 1백60억원을 투입해 모듈(태양 전지) 제조 단가를 8천원/W에서 2천5백원/W으로 낮추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3㎾급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7백50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3만호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2002년 7월 현재 4943㎾에 불과한 태양광 발전 용량이 2010년에는 9만㎾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위 상자 기사 참조).

이상훈 사무국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시민발전소처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야 재생가능에너지 운동이 뿌리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설치비이다. 그는 “전력은 적게 생산되고 설치비는 비싸기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태양광 전기를 쓰는 일은 단순히 에너지 소비 행태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과 환경, 문화와 미래까지 바꾼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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