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안 막고도 먹는 순한 홍어찜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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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은 홍어가 대풍인지, 수산시장에 ‘국산’이라고 써 붙인 홍어가 자주 눈에 띈다. 우리 나라 서남해안에서 홍어잡이가 거의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꽤 오래 전이다. 물론 국산 홍어 중 참홍어 맛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옛날 옛적 일이고…. 1980년대 중후반께, 전남 출신인 박현채 선생 부친상 때 그 댁에서 참홍어를 내놓았단다. 그 집안이 홍어 전문상이었는데, 사람들이 홍어 맛을 보고 참홍어냐고 물어보니까, 박현채 선생이 “그럼 홍어 장사 하는 집 초상 치르는데 참홍어 쓰지 딴 거 썼을까 봐?” 하셨단다. 이제는 박현채 선생도 다른 세상으로 가신 지 10년이 넘었으니 참 오래 전 일이다.

그 후 국산 홍어는 늘 소문으로만 있었을 뿐, 시장의 홍어는 모두 ‘칠레 산(産)’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우스갯소리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으나, 목포 앞바다에 홍어잡이 배가 딱 한 척 있었단다. 홍어가 하도 안 잡히고, 잡혀봤자 값이 너무 비싸 팔리질 않으니, 선주가 배를 폐기 처분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말렸단다. 마지막 남은 홍어 배 하나가, 그나마 국내 시장에 돌아다니는 홍어 중 몇 마리에라도 ‘국산’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홍어가 우리 나라 서남해안에서 나는 생선이니, 조기나 꽃게처럼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중국산을 들여올 법도 한데 하필 그 먼 칠레에서 들여오나 궁금했는데, 민속학자 주강현 선배가 정확한 해답을 말해주었다. 중국 쪽 바닷물과 우리 나라 남서해안의 바닷물이 온도나 탁함의 정도가 달라서, 중국산 홍어는 아주 맛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칠레에 꼭 우리 나라 남서해안 같은 물이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단다. 거기에서 나오는 홍어를 우리가 수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우리 바다에서 홍어가 다시 잡히기 시작한단다.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라고 하면 역시 폭 삭힌 홍어를 쪄서 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며 탁주를 곁들여야 제맛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도시의 보통 가정에서 해먹을 수가 없어 홍어 전문 음식점에서나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최근에는 수산시장에서 삭힌 홍어 몇 점을 포장해 팔기 때문에 이걸 애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코를 톡 쏠 정도로 매워진 삭힌 홍어는 좀 부담스럽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의 홍어 요리는 이보다 훨씬 순했고, 조리 방법에서나 맛에서나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이었다.

싱싱한 홍어를 사다가 다듬어, 소금물에 약간 담갔다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그 홍어를 찜통에 넣고 찌는데, 왜간장과 파·마늘, 약간의 설탕을 타서 검은 껍질 위에 살살 바르고, 실고추와 통깨 같은 것을 뿌려 모양을 낸 후 찐다. 이것을 양념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꾸덕꾸덕 말리는 과정에서 홍어 냄새가 약간 강해지지만, 삭힌 홍어의 쏘는 맛과는 달리 순하고 달착지근한 홍어 육질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오돌거리는 연골의 맛이 매력 있다. 잔치가 있기 며칠 전이면 앞마당 빨랫줄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매달려 있던 그 커다란 홍어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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