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에서, 별을 내 품안에
  • 김우선 (<사람과 산> 편집부장) ()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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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산행, 도시인 등산 유형으로 자리잡아…시간·경비 절약 되지만 안전 사고 조심해야
그들은 밤에 떠난다. 현란한 도심의 불빛을 뒤로 하고 배낭을 멘 이들이 탄 버스는 밤새워 달려서 멀리 설악산이나 지리산·월출산, 땅끝 두륜산·달마산까지도 간다. 백두대간도 좋고, ‘낙동정맥’도 좋다. 아직 동이 트려면 먼 시각, 때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불을 피우고 뜨거운 국물과 함께 간단한 요기를 마친 후 깜깜한 산으로 향하는 이들. 하나 둘, 셋…. ‘이마등(燈)’ 불빛으로 길을 밝히며 정상을 향해 오르는 발걸음은 가볍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벗하는 밤이라면 더욱 행복한 산행. 달 없는 밤이면 별빛이라도 좋다. 잠시 쉬는 사이 수천 수만 개의 찬란한 별, 하늘 한복판으로 흐르는 은하수가 가슴을 울린다. 칠흑처럼 어두운 계곡 저 깊은 바닥에서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이 땅에서 통행 금지 제도가 없어진 이후의 풍속도에 해당하는 야간 산행이 도시 직장인들의 등산 유형이 된 지는 벌써 10년이 넘는다. 일요일 산행을 위주로 활동하던 각 직장 산악회가 좀더 멀리 떨어진 산에 오르고자 계획을 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요일 밤에 출발해,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고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무박 2일 등산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북한산 인수봉이나 선인봉에서 주말을 이용해 암벽 등반 훈련을 하던 산악인들에게 야영지까지 밤에 올라가는 야간 등산은 늘상 있는 일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공원 내에서 지정 장소 외 취사 야영 금지 제도를 실시했으며 사고 방지를 위해 야간 산행도 금지했다. 그러나 이는 국립공원 구역 내에서의 금지 사항일 뿐이지 우리 나라 전역의 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직도 많은 직장 산악회와 안내 산악회가 무박 산행 내지 야간 산행을 하고 있으며, 이를 즐기는 등산인도 많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의 경우 여름 한낮 30℃가 넘는 무더위를 피해 일부러 야간 산행을 택하기도 한다.

직장 산악회나 안내 산악회의 경우 야간 산행을 하면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무박 산행은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과 체력 소모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야간 산행에서는 해당 등산로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눈 감고도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 및 중간과 후미를 챙겨서 낙오하는 이가 없도록 배려하는 서브 리더의 존재가 필수다.

유능한 서브 리더들이 없는 야간 산행에서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벌어질 경우 뒤따라오는 일행이 길을 잘못 들 위험성은 늘 있다. 급한 마음에 일행을 찾으려다 넘어져서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야간 산행은 늘 안전 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험 많은 리더는 선두와 중간에 서브 리더를 세우고 자신은 맨 뒤에서 무전기로 교신하면서 산행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야간 산행 대상지로 인기가 높은 곳으로는 설악산·지리산·월출산 등 국립공원 외에 완도 상황봉, 사량도 지리망산, 거제도 노자산·가라산 등 섬 지역의 산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충청권과 경상북도·전라북도 지역 산까지 당일 산행이 가능해진 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야간 산행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산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날 오후 서울 근교의 산은 달맞이 산행객으로 붐빈다. 특히 북한산 백운대에서는 멀리 북쪽으로 개성 송악산이 바로 보여 추석 때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보름달이 뜨는 날만 골라서 산에 오르는 마니아들도 제법 있다.

대도시 근교의 산에서 내려다보는 화려한 야경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자동차와 가로등 불빛으로 이어진 길은 흡사 ‘불뱀’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신이 창조한 것이 지구라면 도시는 정말 인간이 만들어낸 걸작 중 하나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야간 산행에 꼭 갖추어야 할 장비는 헤드랜턴과 나침반, 또는 GPS. ‘이마등’이라고도 불리는 헤드랜턴은 머리에 부착하여 길을 비추는 조명구로 자동차의 전조등과 같은 구실을 한다. 야간 산행 때는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아야 안전하게 산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헤드랜턴은 손전등보다 훨씬 더 기능적이고, 등산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장비다.

최근에 나오고 있는 LED(light emitting diode) 헤드랜턴은 AAA사이즈 알카라인 건전지 3개로 80시간까지 밝힐 수 있으며, 밝기도 기존 헤드랜턴에 비해서 훨씬 강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무게가 60∼70g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거의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지형 지물이 별로 없는 사막이나 극지 탐험 등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우리 나라처럼 계곡이 많은 지형에서는 비싼 장비인데도 나침반만도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최근 백두대간 종주에서는 유감 없이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산악 전문지 <사람과 산>이 GPS 좌표가 수록된 낙동정맥 지도를 발행하면서 그 정확성을 입증한 바 있다. 현재 매월 구간 별로 나오고 있는 GPS 좌표 호남정맥 지도 역시 등산인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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