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언저리 뉴스’ 맛을 알아
  • 정윤희 (컴퓨터 칼럼니스트) ()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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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 미디어’ 블로그, 디지털 시대 새 매체로 각광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소나기 일기’를 쓰고는 했다. 기억마저 희미한 날씨를 고생스럽게 떠올리고,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 한달치 일기를 쓰고 나면 식은땀이 흘렀다. 시대가 바뀌고 나니, 이제 일기는 종이가 아닌 웹으로 이동하고, 누군가 시켜서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적어가는 일상의 기록이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기록을 블로그(blog)라고 부른다. 블로그란 웹(web)이라는 단어의 ‘b’와 항해 일지, 여행 일기라는 뜻의 로그(log)를 합한 말이다.

블로그는 웹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따져보면,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하멜의 <하멜 표류기>가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들은 틀림없는 블로그의 선두주자가 되었을 것이고, 또 나폴레옹이 조금만 운이 좋았더라면, 마지막 유배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썼던 <세인트헬레나의 일기>로 세계적인 웹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인터넷에 새로운 좌표를 긋고 있는 블로그, 그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항해를 시작해보자.

1997년 11월 존 버거(www.robotwisdom. com)가 처음 쓰기 시작한 블로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티즌들에게 그다지 주목되지 못했다. 단지 온라인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의 하나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러던 블로그가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라크 전쟁. ‘살람팍스’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blogger: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가 이라크 전쟁의 생생한 모습을 자신의 블로그(http://dear_raed. blogspot.com)에 올려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원맨 미디어’라 불리는 인터넷 저널리즘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 때 한 승객이 찍은 사진 역시 그 출처가 블로그 사이트였고, <뉴욕 타임스>의 오보 기사를 찾아내 블로그에 올려 정정 보도까지 이르게 한 것도 블로거의 힘이었다. CNN의 전문 기자는 방송 보도와 별도로, 자신의 블로그에 이라크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으면서 언론 매체들을 앞서가는 재치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블로그가 모두 저널리즘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한 가지 테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규칙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정확하게 ‘이것이다’ 하고 정의를 내리기 모호한 것이 블로그이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의미의 블로그를 설명한다면, 첫째 게시판 형식으로 운영되고, 둘째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고, 셋째 짧은 글과 함께 사진이나 그림 등을 올리고, 넷째 그 글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제 블로그는 작은 일상에서부터 사회적인 이슈까지 모두 포함해,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다.

카피라이터 현재덕씨(34)가 운영하는 ‘여보세요 현카피’(http:// hyuncopy.com)라는 블로그에 들어가 보자. 강한 이미지의 사진 한 장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 한 곡, 그리고 평소 광고 일을 통해 다듬은 실력으로 써내린 문구, 그의 홈페이지도 이렇듯 블로그의 모습을 띠고 있다. 현카피 마니아까지 확보한 탓인지, 게시물 하나에 리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카피라이터와 블로거, 두 장의 명함을 가진 그는 ‘이곳은 일종의 낙서장이다. 내 얘기와 그들의 얘기, 서로 주고받은 의사 소통이야말로, 하나의 걸개그림을 만들기 위한 집단 창작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자신의 블로그에서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 그 생생한 체험 현장을 만나볼 수 있는 블로그가 있다.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 기념 등반대의 일원인 가리아노의 블로그다. 위성 전화를 이용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오디오 블로그(http://news.kmi. open.ac.uk/everest)에 도전했다. 산악인들뿐 아니라 블로거들도 그의 시도에 주목하며 성공을 빌어주고 있다.

이렇듯 블로그는 최근 개인 홈페이지의 기존 형식들을 가볍게 무너뜨리고 있다. 복잡한 메뉴 구성과 디자인,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배워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블로그 관련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바로 만들 수 있어 더욱 인기다. 과거의 홈페이지가 화려하고 푸짐하게 차려놓은 뷔페였다면, 최근 홈페이지 추세는 블로그 성향을 띤, 깔끔하고 세련된 퓨전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에이블클릭’(http://www.blog.co.kr)은 블로그를 만드는 공간을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선보여, 4개월 만에 회원 7만5천명을 확보해 국내 블로그 열기를 실감케했다. 또 지역별·연령별·나이별 등 다양한 구성을 갖추고, 블로그의 내용 또한 폭넓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의 블로그가 전문적인 글을 중심으로 꾸며진 데 반해, 에이블클릭은 사진과 그래픽, 아바타 기능 등을 추가해 ‘신토불이 블로그’로 평가받고 있다.
웹로그인코리아 ‘위크’(http://wik.ne.kr)는 2001년 유학생과 대학생이 만든 비영리 단체로, 국내 최초의 블로거 모임이다. 한국어로 만든 블로그 운영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상업적인 목적을 가졌다면 가입할 수 없다. 가입 후 위키 명단에 올려지면, 위키드가 되어 순수 블로거로 활동하게 된다.

이렇게 블로거들이 늘어나고 유대 관계까지 맺게 되면, 하나의 블로그는 또 다른 블로그와 공유하게 되고, 다시 또 다른 블로그로 이어지고, 이것이 연결되면 인터넷에 거대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일종의 통합 블로그까지 생기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도 블로그 관련 사이트를 속속 준비 중이다.

지난 4월 한미르가 처음으로 블로그(http://blog.hanmir.com)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싸이월드는 현재 운영중인 ‘미니홈피’에 블로그 개념을 도입할 계획이고, 엠파스·드림위즈·네오위즈 등 포털 사이트에서도 빠르면 상반기에 서비스를 오픈할 예정이다.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웹에 올려놓는 것은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나폴레옹이 유배지에서 쓴 기록이 귀중한 역사책이 된 것처럼 말이다. 블로그의 힘은 무한하다. 메아리치는 목소리만 있다면, 그 반가움으로 블로거는 다시 메아리를 보내고, 다시 즐거움이 되어 돌아온다. 디지털 시대,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세상을 맛보려면 이제 당신도 블로거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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