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김병현 ‘변신’ 와인드업
  • 이태일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
  • 승인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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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력 보강’ ‘선발 전환’ 목표 향해 돌진
선인장과 사막으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 주는 매년 2월이면 야구 열기로 뜨거워진다. 피닉스 시 주변에 ‘선인장 리그’라고 불리는 메이저 리그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지기 때문이다.피닉스 시내의 한국 식당 고송(古松). 그 곳에는 박찬호(30·텍사스 레인저스)와 김병현(2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유니폼 상의가 진열되어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병현만이 단골 손님이었다. 피닉스 뱅크원 볼파크가 홈 구장인 김병현은 시즌 중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그 곳에서 식사를 한다. 그래서 ‘BK롤’이라는 이름이 붙은 초밥 메뉴까지 있다. 자연스럽게 주인은 김병현과 친해졌고 유니폼까지 선물받았다. 박찬호의 유니폼은 열성 야구팬인 식당 주인이 인터넷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다. 박찬호를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박찬호도 그 집의 단골이 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가 올해부터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 시에 캠프를 차리자, 운동장에서 약 30분 거리인 그 식당으로 박찬호가 거의 매일 밥을 먹으러 들르게 된 것이다. 캠프가 열리는 기간에는 오히려 2시간 30분 거리인 투산에서 운동하는 김병현이 그곳을 찾지 못한다.

그 식당 주인에게 두 가지 소원이 생겼다. 새로운 단골 박찬호가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 준비를 마치고 피닉스를 떠나는 것과, 한 달째 떨어져 있는 ‘원조 단골’ 김병현이 자신의 올해 목표인 선발 투수가 되어서 피닉스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 식당 주인이 박찬호를 처음 만나던 날, 주인은 박찬호에게 “김병현 선수와는 연락을 하고 지냅니까?”라고 물었다. 둘의 관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때 박찬호는 “병현이는 지난해 제가 아프고 부진했을 때 자주 전화를 걸어 ‘형 힘내’라고 말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그 전까지는 제가 병현이에게 힘내라고 격려했었는데 말이죠”라며 밝게 웃었다. 특유의 논리적인 말투로 김병현과의 돈독한 관계를 소개한 것이다.

박찬호는 달변이다. 세심한 성격이어서 매사를 꼼꼼하게 챙긴다. 운동장에서도 그렇다. 유니폼을 입을 때부터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까지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흐트러짐이 없다. 인터뷰에서도 늘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펼치는 스타일이다. 미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도 매끄럽게 이끌 줄 알고, 팀 동료나 구단 관계자 들과의 관계도 잘 챙긴다.

이런 박찬호의 성격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는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허벅지를 다쳐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부진했다. 9승8패로 시즌을 마감해 6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올리는 데 실패했다. 모두가 실망했다. 그의 팬들도, 고액 연봉을 받은 동료에게 기대를 걸었던 레인저스 선수들도, 그리고 누구보다 박찬호 자신도 부상과 부진에 크게 실망했다.

시즌이 끝난 뒤 열심히 부상 부위를 치료한 박찬호는 이번 캠프 훈련 기간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내고 있다. 지난해 캠프 막판에 부상했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보내는 것이 이번 캠프의 첫 번째 목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신은, 직구의 제구력을 완벽하게 갖춘 투수가 되는 것이다. 박찬호는 국내 시절부터 메이저 리그까지 제구력에 관한 한 불안한 투수였다. 그래서 빠른 공을 앞세워 삼진을 많이 잡았지만 볼넷도 많이 내주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안타를 맞더라도 볼넷을 내주지 않는’ 투구 패턴을 몸에 익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직구를 고집한 투구로 최근 두 시범 경기에서 흠씬 두들겨맞기도 했다. 방어율이 무려 21.21이다. 그러나 박찬호는 “남은 경기에서도 직구를 시험하겠다”라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제구력의 마술사’로 불리는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같은 직구를 던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박찬호의 올 시즌 재기 여부는 직구 제구력이 어느 궤도까지 오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찬호와 달리 김병현은 다소 어눌하다. 무던한 성격이어서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의 간섭을 아주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나만의 세계’에 다른 사람이 넘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스타일이다. 만화·DVD 마니아여서 혼자 있는 시간과 공상을 즐긴다. 그래서 말이 없다. 그러다 보니 팀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고 인터뷰에도 낙제점이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해도 단답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성격이지만 김병현은 마운드에서는 대범하다. 그의 공를 받아본 포수들은 “김병현은 상대 타자가 아무리 강타자라도 절대로 기가 죽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처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의 길을 가는 고집을 바탕으로 기어이 ‘언더 핸드는 선발이 안된다’는 통념에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시범 경기 네 차례 등판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인시켜 가고 있다.

김병현은 선발로 시즌을 시작한 뒤 풀 시즌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 주자가 있을 때의 퀵 모션, 왼손 타자 위주의 타선 극복 등 난제들을 풀어야만 ‘합격’이라는 인증을 받을 것이다. 이 부분을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김병현은 지금까지 ‘작아서’ ‘언더 핸드여서’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려 왔다. 그는 “마운드에서 내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투수판을 밟고,내가 왕이라는 생각으로 던진다”라고 말한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김병현에게 선발 투수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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