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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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들과 개별 만남 갖겠다”
대규모 기업 집단, 이른바 재벌이 안테나를 곧추세우는 곳은 청와대만이 아니다. 그들은 공정거래위원회 강철규 위원장의 동선을 파악하려고 늘 부심한다. 공정위가 참여정부의 굵직한 경제 개혁 과제들을 수행하는 전위 부대이기 때문이다.

강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한 이래 재벌 해체론에 가까운 목소리를 냈던 학자 시절의 강성 이미지는 벗어던졌지만, 재벌 개혁에 대한 소신만은 변함이 없다. 그의 일관된 행보는 ‘가장 헷갈리지 않게 하는 각료’라는 평을 끌어냈다. 7월19일 과천 청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출자총액제는 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장애물인가?

출자도 일종의 투자이니까 다소 관련은 있지만, 기업들은 출자총액제가 투자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 계열사라고 해도 기업 내 투자는 아무 제한이 없다. 순자산의 25%까지는 계열사간 출자도 허용된다. 또 동일 업종이나 IT· BT 같은 신산업 분야, 외국인 투자법인, 중소 벤처 기업에 대한 출자에는 예외나 적용 제외를 인정하고 있다. 출자총액제 때문에 투자가 안된다는 것은 근거가 박약한 주장이다.


출자총액제에 대해 재계는 국내 기업 역차별론을 들며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학계나 시민단체는 예외나 적용 제외가 너무 많아 실효성을 잃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국 기업들은 기업 내 출자나 투자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재벌 총수가 가공 자본으로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것이 출자총액제의 목적이다. 이런 원래 목적에 맞게,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취지에서 민간합동기구인 시장 개혁 태스크포스가 발족했다. 7월16일 첫 회의를 가졌으며 7월30일 2차 회의를 갖는데, 여기서 논의할 것은 크게 세 가지다. 51%나 되는 예외나 적용 제외 조항을 어떻게 손질할 것이냐, 부채 비율 100% 졸업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이냐, 그리고 중장기적인 출자총액제 개편 방안이 무엇인지를 모색할 예정이다. 부채 비율이 100% 미만이라고 해서 가공 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장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 원래 관련이 없는 것을 연결해 놓아 잘못되었다. 어떠어떠한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졸업시킨다(출자총액제 적용 면제)는 식으로 논의의 차원을 넓혀 보려고 한다. 가령 완전한 형태의 지주 회사라면, 계열사간 순환 출자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가공 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장이 문제될 것이 없으므로 졸업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체제는 기업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재계의 지적에 동의한다. 정부는 다만 과거 개발 연대의 산물인 재벌 체제가 갖는 왜곡된 소유 구조, 동반 부실화 가능성, 부당 내부 거래 같은 문제를 시정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일종의 비전을 예시한 것이다. 지주 회사만이 아니라 독립 기업화, 소그룹별 분리 같은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더 투명한 체제로 개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장차 그렇게 가야 한다고 믿는다. 시장에 기초한 영미식과 관계를 중시하는 독일·일본식 가운데 영미식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학계에서도 결론이 나 있다. 한국식은 이해 관계자 모델이면서도 독일과 일본 기업에는 없는 총수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후진적 이해 관계자 모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황제 경영을 비판하는 이들은 황제를 없애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켠에서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제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제도 개선을 얘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설령 황제를 없애도 시스템이 없으면 또 다른 황제가 등장할 것이다. 시스템은 주주자본주의가 제대로 뿌리 내리기 위한 선결 과제다. 주주가 가장 중요하지만, 금융기관·고객·노조·(원료 및 부품) 공급자 같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 관계자들도 견제와 균형을 갖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 가끔 보고받고 있다, 이번 6대 그룹 조사는 1998년 이후 열 차례 했던 조사와 성격이 같다. 지난해 가을 공시 제도 이행 점검을 했는데 이때 미공시 사항과 함께 크고 작은 부당 내부 거래 혐의가 포착되었다. 7월 말에는 조사가 끝날 것이고 9월께 결과가 공개될 것이다. 계열사 간만이 아니라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 지원도 조사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다. 만약 발견된다면 관계 기관(국세청)에 통보할 생각이다. 기업과 정부는 나름의 다른 목적 함수를 갖고 있다. 경기는 순환 주기를 갖는 하나의 패턴이지만 구조 개혁은 다르다. 경기 변동과 같이 춤을 추면 안된다.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구조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장 잠재력을 잃게 돼 국민소득 2만 달러가 상징하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앞으로 3∼5년 간이 중요한 까닭은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리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지향점은 경쟁 주창자로서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고 시장 경쟁을 공정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담합(카르텔)을 막고 기업 결합을 심사하는 따위의 경쟁 정책을 펴는 것은 다른 나라 공정위와 같다. 다른 것은 대기업 정책을 편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외국에는 재벌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산물이다. 소유 구조나 출자총액제 등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벌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재벌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중소기업이 왕성하게 자랄 수 없는 구조다. 공정위에 와 보니 위원회 심판정에 올라오는 80∼90%가 경쟁 촉진과 소비자 구제 관련 사안이다. 재벌 관련 정책은 많아야 20%인데 언론에는 이것만 크게 보도된다. 재벌들이 자기 주변의 온갖 인사들을 동원해서 부각하는 것이다.우리 경제를 이만큼 끌어온 분들로, 나름으로 철학을 갖고 있다. 그런데 젊은 세대 창의적인 기업가들과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분들은 개발 연대에 정부의 온갖 지원 세례를 받으면서 기업을 키워왔다. 지금도 지원은 받지 않겠지만 그룹을 형성해 배타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과거 이 분들의 역할이 선진국 시대에도 기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대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 분들과 함께 가려고 한다. 쓸데없는 마찰을 줄이고 옳은 것이 있으면 받아들이겠다. 기업 경영 경험이 없으니 기업의 애로 사항을 잘 모를 수 있다. 공정위 3개년 계획을 짜고 있는데 이 계획이 완성되면 재벌 총수들과 개별 만남을 가질 생각이다. 만나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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