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연은 교수님 한희민은 도사님
  • 이병훈 (SBS 야구 해설위원) ()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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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 야구 스타들의 그라운드 밖 인생 열전
지난 7월17일 대전 야구장에는 ‘별에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별들의 잔치 올스타전 때문이다. 김응룡 감독 표현대로 ‘오∼동렬이도 왔고 오∼종범이도 왔다.’ 이 날 축제에서 MVP로 뽑힌 이종범은 국내 최초로 정규시즌 MVP, 한국시리즈 MVP, 올스타전 MVP을 수상하면서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냈다. 역시 쇠복(?)은 타고난 선수다.

또 올드 올스타의 국보급 투수 선동렬은 최고 구속 142km에 달하는 강속구를 뿌려 현역투수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지도자로의 컴백이 아니라 선수로의 컴백도 가능해 보일 정도로 대단한 피칭을 선보였다.

이 날 축제를 즐기는 동안 필자의 머리 속에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 그라운드를 ‘방방’ 날아다니던 스타들의 얼굴 말이다. 1982년 올스타전 초대 MVP였던 김용희 전 감독부터 이종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왕별’들이 배출되었지만 이번 올드 올스타에 선발된 스타들을 제외하면 다들 어디에서 뭘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강기웅·김봉연, 선수 시절 부업 때문에 티격태격

역대 MVP 중에 외국에 사는 사람은 1986년 해태 김무종과 두산 우즈밖에 없는데도 추억의 ‘왕’ 별들을 볼 수가 없어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다.

이 날 몇몇 야구인들은 보고 싶은 사람들을 얘기하면서 ‘강기웅’을 많이 찾았다. 1980년대 아마추어에서 타격의 신으로 불렸고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에서 최고의 ‘배팅 테크니션’으로 통했던 강기웅은 현역 시절 특이한 부업을 했다. 대구 지역에서 빌라 형식의 집을 지어 판매하는 건설업을 했다. 당시 삼성측에서는 운동에 전념해 주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강기웅은 내가 언제 경기 중에 집 파는 것 보았느냐며 ‘야구는 야구, 사업은 사업’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결국 눈 밖에 나서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야구 천재 강기웅의 선수 생활은 거기서 끝이었다. 대구를 떠나 있으면 사업 전선에 지장이 있다며 태평양에 합류하지 않고 유니폼을 벗어버렸다. 노후 대책을 너무 일찍 준비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그 사업마저 접고 ㅇ병원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올스타전에 참가한 김봉연 전 코치(지금은 교수님이다)도 해태 시절 부업 때문에 김응룡 감독과 마찰이 있었다. 당시 제법 큰 규모의 식당을 열었는데 김코치의 얼굴이 간판인지라 손님이 꽤 많았다. 그러자 김감독은 가게 일이 바쁘면 선수들한테 관심을 쓸 수 없다며 가게를 정리하라고 했다.

김코치가 돈을 잘 버는 것을 탓한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김감독이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동안 서로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김코치가 잘 나가던 가게를 정리했다. 김감독에게 ‘충심’을 보였던 것인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김감독이 김코치를 끌어안지 않아 김응룡 사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김봉연 전 코치는 별명이 ‘촌놈’이다. 외모도 투박스럽고 말투 역시 부드럽지 못하다. 하지만 상당히 박식하고 말주변이 뛰어나다. 그 장점을 잘 살려 지금은 극동대학 교수로서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야구계의 ‘기인’은 한희민이다. 그는 현역 시절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외모(별명이 E.T.일 정도로 한번 보면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다)만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승합차를 타고 다녔는데, 그것도 실내를 완전 개조해서 작은 침실을 만들어놓았다. 그 안에다 노래방 기계는 물론이고 실내등도 예전에 ‘가리봉동’ 스탠드바에 가면 있음직한 현란한 조명이었다. 워낙 방랑기가 있어서 승용차로는 심심해서 못 다닌다며 승합차를 작은 업소처럼 꾸미고 다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차를 타보았지만 입장료를 받은 적은 없다.

그런 그가 빙그레에서 방출되고 타이완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잠깐 뛰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그답게도 산속에다 터를 잡았다. 그렇다고 산짐승이나 뱀 잡아 먹고 산 것은 아니고 그곳에서 ‘난’을 치고 나무를 다듬어 예술 작품을 내놓았다. 그림도 그렸다. 머리를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기르고 수염도 도사님처럼 길게 길렀다. 찾아오는 사람들한테는 ‘다도’를 가르쳤으니 산신령 같은 삶이었다.


한번은 기자가 취재를 갔더니 돌을 잔뜩 모아놓고 나무에다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 기자가 뭐하는 것이냐고 물어보니까 답이 걸작이었다. ‘마구’를 연습하고 있다고. 그 말을 들은 기자는 정말 배꼽을 잡고 쓰러져서 웃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순수한 사람이 한희민이다. 지금은 옛 동료 유승안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서 후배들을 다듬고 있다.

그밖에 은퇴하고도 여전히 휘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삼성의 홍성연, LG의 이승범, 시범경기 2회 홈런왕에 빛나는 김홍기 등은 프로 골퍼로 변신해 요즘도 연일 휘두르고 있다. 또 야구인 최초로 대통령 저축상에 빛나는 동봉철은 현역 시절 잘생긴 외모와 아기자기한 플레이로 여성팬을 몰고 다녔는데 지금은 연예인 매니저가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제는 프로 출신이 아마추어 지도자로 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지도자로 성공한 이도 많다.

제2의 야구 인생을 멋있게 살고 있는 스타들도 있지만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제3의 인생을 멋지게 그려나가는 야구쟁이들이 많다는 것이 너무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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