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사망률 병원 따라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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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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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차만별 보험공단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나
서울에 사는 유 아무개씨(61)는 4년 전 어느 날 ㅎ병원을 찾아갔다. 며칠 전부터 가슴 부위가 뻐근해서였다. 진찰과 검사를 받은 뒤에 유씨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폐암 선고를 받았다. 유씨는 두려움 속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개원한 지 얼마 안된 ㅅ병원을 찾았다. 그곳의 의료진과 시설이 ㅎ병원보다 더 낫다는 믿음이 가고, 진짜 폐암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ㅅ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신속한 행동이 100% 옳았음을 알았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시설이 낙후한 병원을 전전하다가 수술 시기를 놓친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덤으로 얻은 삶을 건강히 살고 있다는 그는 “지금도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ㅎ병원에 그대로 있었다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가 ㅎ병원에서 계속해 치료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가정이다. 지금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암환자가 유씨와 같은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자신의 암을 잘 고칠 병원이나 ‘화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행운을 얻는 사람은 흔치 않다. 어디에서도 그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정감사에서 의미 있는 자료가 나왔다. 지난 10월5일 국민건강보험공단(보험공단)이 개혁당 유시민 의원에게 제출한 <대학병원(종합전문병원) 암환자 1년 사망률>(2001년 신규 환자 100명 이상 진료 병원 기준)이라는 자료(암 사망률 자료)가 그것이다.
그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내로라 하는 대학 병원 간에도 암환자 사망률에 엄청난 차이가 났다. 예컨대 위암 환자 사망률의 경우 ㅅ병원이 13.1%인 데 반해 ㄷ병원은 42.1%로, 두 병원 간에 3.2배나 차이가 났다 폐암 환자 사망률도 차이가 컸다. ㅅ병원은 25.7%인 데 비해, ㅎ병원은 65.4%나 되었다(2.5배). 간암 환자 사망률도 비슷한 차이를 나타냈다. ㅅ병원은 36.3%였는데, ㅇ병원은 69.7%를 기록한 것이다(1.9배). 유의원은 이 자료를 발표하면서 “암이 직접 사인이 아닌 일부 사망 환자가 사망자에 포함되고, 환자 간의 경·중 정도를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파장은 컸다.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유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사망률이 낮게 나온 병원을 알려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암환자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의원측은 알려줄 수가 없었다. 환자들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공개 자료에 병원 이름을 실명 대신 ‘ABC…’와 ‘ㄱㄴㄷ…’ 순서로 기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사저널>은 다르게 생각했다. 자료에 흠이 있지만, 암환자들이 병원이나 의사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는 현실에서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료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기로 했다. 그 작업을 위해 <시사저널>은 병원 이름이 고스란히 적힌 자료를 어렵사리 입수했다.

<시사저널>은 우선 전문가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그 가치를 물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자료를 평가 절하했다. 대다수가, 조사가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자료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만 몇몇 전문가만이 허점은 있지만 암환자들에게 알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그들은 파장을 우려해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고민 끝에 후자를 따르기로 했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작성하고 국정감사에서 주요 자료로 다루어진 데다, 암환자들도 알 필요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래 기사는 암 사망률 자료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을 다루었다. 암 사망률 자료를 공개하면서 <시사저널>은 이 자료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자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암환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암 사망률 자료를 맨 처음 본 전문가는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이었다. 그는 자료를 보자마자 “객관적인 심사 자료가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가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암환자는 보통 1∼4기로 구분된다. 그리고 기별로 5년 생존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1기 90%, 2기 50%, 3기 30%, 4기 10%). 그런데 암 사망률 자료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병원에는 수술이 가능한 1,2기 환자가 많이 몰리고, 영남대병원에는 임종이 임박한 암환자가 몰렸을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원장은 “예를 들어보자. 아프리카 가나에는 65세 이상 노인이 2%이다. 반면 한국에는 14%나 된다. 어느 나라의 암환자 사망률이 더 높을까. 당연히 한국이 높다. 그렇다고 가나가 더 건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서울대병원 암연구소 방영주 소장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기업의 수준은 재무제표로 비교할 수 있지만, 한국 병원은 비교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는 의사 숙련도나 치료 기술에 의해 치료율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병원을 비교해 차이가 있는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료를 만든 보험공단 연구센터의 견해는 다르다. 한 관계자는 “여섯 달 이상 환자들을 추적해 만든 자료다. 우리는 지금도 각 병원 암환자의 성별·연령·암의 경중 정도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환자들은 서울과 지방 병원 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각 병원의 사망자 수가 병원 내에서 사망한 환자만이 아니라 퇴원한 뒤에 사고나 다른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까지 포함된 숫자라고 밝혔다.

병원별 암환자 사망률

아래 자료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6개월에 걸쳐 작성한 <대학병원(종합전문병원) 암환자 1년
사망률>(2001년 신규 환자 100명 이상 진료 병원 기준)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의료 기술과 의료진의 수준이 비슷한 것으로
알려진 대학병원 간에도 사망률이 큰 차이가 난다. 자료 가운데 암환자 수는 경증·중증 여부를 세분화하지 않은 숫자이다.


그러나 유의원측은 “각 병원마다 샘플 수가 100건이 넘는다. 그런데도 암환자 사망률이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났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의사들도 자료의 허점만 공격할 게 아니라, 본인들이 더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라”고 말했다.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은 “대학병원 간에 차이는 이미 있어왔다. 이제는 그 차이가 왜 나는지 밝혀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암환자의 경증·중증을 구분하지 않은 자료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전제한 뒤, 한국도 이제 미국처럼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의사별 암환자 치료율·사망률까지 공개한다. “정부가 자료를 보완해 하루빨리 각 병원의 암환자 사망률을 공개해, 환자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보건·의료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자료에 허점은 있지만 마땅히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지적하는 한계를 보정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자료를 덮어두는 것은 암환자들의 고통을 덮어두는 일이나 마찬가지다."간암 환자 사망률에서 비교적 높은 수치를 보인 강북삼성병원의 조용균 교수(소화기내과)는 집계부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강북삼성병원의 2001년 신규 간암 환자 수를 확인해본 결과 모두 1백6명이었다(암 사망률 자료에는 1백11명). 게다가 사망자 숫자는 29명(원내 사망)에 불과했다. 이 수치대로라면 강북삼성병원의 암환자 사망률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셈이 된다. 그는 “대학병원의 암 치료 방법과 처치 기술은 비슷해, 사망률에 큰 차이가 날 수 없다. 잘못된 통계로 환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억울하기는 폐암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나타낸 한양대학병원도 마찬가지이다.
박성수 교수(호흡기내과)는 “세계적으로 의사들이 쓰는 폐암 치료약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는 임종 직전에 오는 폐암 환자가 비교적 많다. 그런 부분이 누락된 자료는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암환자 사망률이 낮게 나온 병원은, 수술이 가능한 암환자가 많이 몰리는 데다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기 암환자를 퇴원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간암·위암 환자 사망률이 비교적 낮게 나온 전남대병원의 최성규 교수(소화기내과)는 비슷한 진단을 했다. 그는 전남대병원의 암환자 사망률이 비교적 낮게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남에는 우리 병원에 버금가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곳이 없다. 그래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대부분 돌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생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영남에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이 많아 웬만한 암환자를 수용한 탓에 사망률이 높게 나왔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암환자 사망률이 의료 기술이나 의료진 수준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대학병원 간에 아예 격차가 없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일부 의사는 병원·의사 간에 미세한 수준 차이가 있다고 인정했다.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박사(종양혈액내과)는 “1년에 두세 번 암 수술을 한 의사와, 한 달에 두세 번 암 수술을 한 의사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항암제 치료를 하다가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도, 의사가 어떻게 처치하느냐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암 사망률 자료처럼 사망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이진수 원장도 “미국 자료에도 경험이 많은 데서 수술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자료가 있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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