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크게 다치거나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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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충돌 사고 ‘치명적’…디자인 개선 등 서둘러야
전세계적으로 SUV(sport utility vehicles)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널리 알려진 대기 오염말고도 또다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SUV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 및 중상자의 비율이 전통적인 세단형 승용차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 연구진이 1995∼1999년 메릴랜드 주에서 일어난 보행자 교통사고를 조사·분석해, 보행자 사망률이 차종에 따라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체 사망자 통계 중 SUV에 의한 보행자 사망률은 세단형 자동차에 비해 72%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비율도 세단형 자동차에 비해 SUV가 48% 높았다.

또한 보행자와 충돌했을 경우, 시속 48km 이상의 충돌 사고에서는 일반 승용차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48km 이하 속도에서는 보행자의 머리·가슴·복부·척추 등 생명과 직결된 부위에 부상을 입히는 비율이 SUV가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SUV는 또 전복 사고를 당할 확률이 승용차에 비해 9배나 높고, 전복 사고가 났을 경우 SUV 탑승자의 사망률도 훨씬 높다. 따라서 큰 차를 타니까 안전할 것이라고 맹신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SUV가 보행자에게 치명적인 존재가 되는 이유로서 세단형 승용차에 비해 차체가 더 크고 무거우며, 차량 앞부분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일반 승용차의 경우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면 차량 앞부분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보행자의 아래 쪽과 부딪히게 되지만, SUV는 앞부분이 높아 생명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반신 부위와 접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우리 나라에서 보행자 사고 비율은 전체 교통사고 건수의 44.3%를 차지해 미국의 14.1%, 프랑스의 12.5%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행자 사고 원인의 54.2%는 운전자 부주의였다고 한다(2001년).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는 화물차 6.8명, 승합차 7.0명으로, 승용차 3.3명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나라 보행자들은 운전자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큰 차에 대한 선호가 유난히 강한 우리 나라 소비자의 성향과, 현재와 같은 유류 가격 체계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 우리 나라에서 SUV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메릴랜드 대학 연구 결과에서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도 SUV와의 충돌로 인한 보행자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SUV는 크기가 작은 다른 차량과 충돌 사고를 일으켰을 때는, 전복 사고가 아닌 경우 SUV 탑승자의 피해가 적다는 이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SUV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보행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SUV 운전자에 대한 특별 교육과 함께 SUV 차량 앞부분 디자인을 개선하는 기술 발전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2002년 우리 나라의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는 전년의 5.5명에서 4.5명으로 감소해,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통사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정부가 차종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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