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방송 논쟁, 국가 경쟁력에 도움 안된다"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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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균 LG전자 DDM 사업본부장

‘전자·정보통신업계 글로벌 톱3’. LG전자가 2010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10월28일 대표이사 취임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톱3’ 달성을 위해 이동통신 단말기와 함께 디지털 TV,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액정디스플레이(LCD) TV 등 차세대 TV 사업을 승부 사업으로 삼겠다”라고 밝혔다. LG전자 안에서 차세대 TV 사업은 광스토리지(저장 장치), 오디오·비디오 사업과 함께 디지털디스플레이&미디어(DDM) 사업본부가 관할하고 있다. DDM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본부장이 우남균 사장이다.

우사장과 인터뷰하기 위해 10월31일 여의도 LG트윈빌딩 7층 사장실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장실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투명 유리였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여 오고가는 임직원들은 우사장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사장실과 잇닿은 회의실도 마찬가지다. 이 방에는 아예 ‘Transparency room’(투명방)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어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우사장의 의지가 엿보였다. 우사장은 “임직원의 합의와 공감 없이는 경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경영 투명성은 임직원의 합의와 공감을 만들기 위한 전제다”라고 말했다.

우사장이 투명성을 남달리 강조하는 밑바탕에는 오랜 외국 생활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974년 LG전자에 입사해 수출 업무를 담당하다가 1978년부터 시카고 지사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0년 LG전자 멀티미디어사업본부(DDM 전신) 부장으로 귀국하기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18년을 지냈다. 그래서였을까, 매너와 절제가 돋보였고 합리적인 논리로 자기 견해를 전개했다. 한국 정서와는 다소 엇나가는 우사장의 언행은 그에게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건네받으면 정중히 사양한다. 또 폭탄주는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 근무할 때 프랑스 지방색이 뚜렷한 와인 3천병을 소장할 정도로 애주가다. 우사장은 “외국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한국의 습관에 익숙하지 않다고 이해해 주는 임직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LG전자 임직원들도 우사장으로부터 합리주의를 배운다는 측면에서 빚을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회의 진행 방식에도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이 배어 있다. 우선 사업 부서간 의사 소통을 위해 부서간 회의를 많이 갖는다. 생산 혁신을 위해 도입한 6시그마, 소프트웨어 프로세스 개선(SPI), e-Transformation 등 갖가지 주제가 붙은 간담회·교류회·공유회를 정기적으로 연다. 또 회의 참석자들은 반드시 한 번 이상은 발언해야 한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발언하지 않으면 회의를 끝내지 않는다. 사업 영역이 넓고 전문 지식이 중시되는 디지털 시대의 경영 환경에서 뛰어난 소수보다는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우사장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된 회의 형태이다. 우사장은 “한두 명의 천재가 카리스마를 갖고 집단의 목표를 제시하고 구성원을 추동하는 시대는 지났다. 임직원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우사장의 합리주의는 대표이사인 김쌍수 부회장의 경영 방식과 극단으로 대조를 이룬다. 김부회장이 ‘아싸리하게 거시기해뿌는’ 성격이라면 우사장은 ‘쿨’하다. 김부회장이 생산 혁신 활동을 주도했다면 우사장은 해외 주력 시장을 개척했다. 경영 스타일과 경험의 차이가 불협화음을 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우사장은 “이 차이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상승 효과를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사장이 2001년 사업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DDM 사업본부는 지난 3년 동안 수출 17조3천억원을 달성했다. 또 세계 최대 76인치 고화질(HD) PDP TV, 디지털 TV용 첨단 시스템온칩 등 신기술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실용화했다. 그 업적으로 11월1일 기업인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오늘 유난히 바빠 보인다. 무슨 일이 있는가?

오후 3시에 중요한 전략회의가 있다. 오전에는 일본 전자업체 대표이사 2명이 방문했다. 한국 전자업체들이 세계 전자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기반 기술과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들여오지 않으면 생산이 불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시해 국내 전자 업체들이 핵심 부품 기술을 보유하자 협력과 제휴를 모색하는 업체들이 잇달아 방문하고 있다.

회사 경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화와 설득이다. 임직원들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경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자기가 맡은 일이 개인·회사·국가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득해야 한다. 과거처럼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으로 직원들을 부리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이같은 리더십이 성공하려면 리더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 아무 것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

LG전자의 승부 사업인 디지털 TV 시장에 접근하는 전략의 요체는 무엇인가?

평면 TV인 PDP와 LCD TV 시장이 예상보다 50%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LCD와 PDP 패널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간다. 따라서 생산 시설을 빨리 확충하는 것이 관건이다. 올 1/4분기 현재 LG전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패널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연말 삼성전자가 새 공장을 열면 세계 최고가 되고 내년 하반기 LG전자가 새 공장을 열면 다시 세계 1위에 올라선다. 또 디지털 방송이 도입되어 전자 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다. LG전자는 디지털 TV 제품을 앞세워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동안 브라질·중국·중동 등 성장 시장에 치중했던 시장 접근 전략을 바꾼 것이다.

디지털 TV 시장 공략에서 난관은 무엇인가?

최근 일부 언론과 노동조합이 디지털방송 송출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국내 디지털 방송 방식은 미국 제니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제니스가 LG전자 미국 자회사다 보니 미국 방식이 LG전자에게 특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TV 생산업체들은 이미 미국식 방식에 맞춰 기술 개발을 마쳤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TV생산업체들도 미국식 디지털 방송 방식을 찬성하고 있다. 삼성전자출신인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도 비생산적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앞장섰다. 이 와중에 디지털 방송 방식을 둘러싸고 왈가불가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력한 경쟁자인 삼성전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 자동차산업을 주도하는 회사들은 30년 전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30년 전 전자산업을 이끌었던 회사 가운데 남아 있는 업체는 거의 없다. 그만큼 부침이 심하다. 시장 변화에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전자 같은 훌륭한 경쟁자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천우신조다. LG전자는 반도체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다. 정보 통신 분야는 삼성전자가 앞서고 가전은 LG전자가 앞서 있다. DDM 사업에서는 앞서는 부문도 있고 뒤지는 제품도 있다. 최근 공시 내역을 눈여겨보면 LG전자가 앞서는 영역이 차츰 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DDM 사업본부장으로서 갖는 보람이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과 LG그룹이 껄끄러운 관계인 것으로 비치고 있다.
진장관이 삼성전자 재직 시절 경쟁자였으나 각사 임원들을 대동하고 한두 번 골프를 칠 정도로 가까웠다. 다른 부문은 모르겠으나 차세대 TV나 디지털 방송 등 DDM 사업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진장관이 잘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진장관이 사업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현실 감각이 뛰어난 정책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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