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실험실, 중소기업에 문 ''활짝''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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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출연 연구소, 중소기업에 실험 장비 개방…'공짜'로 연구 자문도
바이오 벤처 ‘스탕게’의 실험실은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안에 있다. 스탕게 직원들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소유한 연구 장비를 함께 쓰고, 연구하다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관련 연구자에게 자문한다. 스탕게 김건일 사장은 “이곳 실험실을 싸게 빌려서 사용하니까 실험 장비를 구입하는 데 드는 막대한 투자비를 절약하고, 연구 진척 속도도 빨라졌다”라고 말했다.

스탕게처럼 최근 정부 출연 연구소의 기자재나 실험실을 이용하고, 해당 기관 연구자에게 기술 자문까지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연구 기자재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약하는 동시에 ‘공짜’로 기술 자문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처지에서는 일석이조.

민간 기업이 정부 연구소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해 전부터이다. 1981년 한정된 연구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고가 장비를 산·학·연이 공동 활용할 수 있도록 한 훈령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소를 개방하지 않은 곳이 많아 이 법은 한동안 유명무실했다.

IMF 체제가 닥치면서 연구 개발 투자에 어려움을 느낀 중소기업들이 정부 출연 연구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연구소들이 하나둘씩 문호를 개방했다. 1999년 현재 연구 기자재 공동 활용 실적은 68.5%에 이른다.

정부 출연 연구소 가운데 문을 가장 활짝 연 곳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다. 중소기업 지원 연구소답게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1999년부터 연구 장비와 실험실을 개방했다. 원하는 기업에게는 연구원 내에 전용 임대 사무실까지 마련해 주었다.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연구진·첨단 고가 장비 및 시설·실험 공간 등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파격적인 지원은 자본이 넉넉치 않은 중소 및 벤처 기업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도움을 받은 기업들이 대개 창업한 지 1, 2년밖에 안된 ‘신참 기업’이어서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낸 곳은 없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현재 공용 실험실을 20여 개 운영하고 있는데, 중소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연말까지 15개를 더 설치할 계획이다. 연구원 내에 실험실을 임차한 중소기업도 27개에 이른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종구 원장(55)은 “공용 실험실과 렌탈 랩 제도로 기자재 관리나 연구원의 업무가 늘어나는 불편한 점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장비에 대한 이중 투자를 방지할 수 있고, 산·연 공동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어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소 또한 실험 기자재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일에 열심이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이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고가 첨단 기기 및 대형 공동 연구 시설을 설치해 연구 지원과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홍보팀 이정민씨는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실험 기자재는 대학과 각 연구소 및 중소기업에서 100% 활용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소의 실험 기자재는 대덕과 5개 지역 분소(서울·부산·대구·광주·전주)에 설치되어 있다.

이밖에 한국과학기술원·생명공학연구소·에너지기술연구소 등 대부분의 정부 출연 연구소도 실험 장비와 연구 자문 통로를 활짝 열어놓고 도움이 필요한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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