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미국 연방수사국 한국지국장 "수사하러 한국에 온 것 아니다"
  • 주성민(자유 기고가) ()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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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강력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폭탄 450kg은 순식간에 지하층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미국 전역에서 폭발물 전문가들이 동원되었지만 단서를 찾아낼 수 없었다. 사건을 해결한 것은 연방수사국(FBI)이었다. 수사관들은 폐허에서 폭탄이 장치되었던 자동차의 차대번호를 찾아낸 후 전국에 구축된 네트워크를 동원해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회교도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냈다. 연방수사국에는 요원 만 명이 워싱턴의 본부 및 50개 지국, 40개 해외 지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미국 연방수사국은 미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 연방수사국 한국지국은 지난 7월 미국대사관 내에 사무실을 열었다. 한국계인 지국장 이승규씨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지국이 미국대사관 안에 있어 대사관 공보실과 여러 차례 연락해야 했다. 그의 출장 일정 때문에 몇 차례 조정한 끝에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만난 그는 기자와 1958년생 개띠 동갑이었다.

한국지국을 시작한 기분은?

여기 나오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마치고 1974년에 떠났기 때문에 늘 여기가 그리웠다. 거기선 항상 어려웠고, 문화 충격(culture shock)이란 게 있지 않나.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해 어느 정도 성공은 했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난 연방수사국 요원으로 한국에 나와 근무하는 게 소원이었다. 한국에 나올 수 있는 자격은 만 명 중에 한 사람밖에 없다. 그래서 나한테는 서울에서 운전하고 다니는 일까지도 새롭고 좋다.

연방수사국에는 언제 들어갔나?

16년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주류판매점인 리커 스토어에서 시간제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자주 오던 연방수사국 요원과 친한 사이가 되자 그가 너 같은 백그라운드면 충분하니까 들어올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사실 미국에선 연방수사국이 환상적이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16년이 되고 보니 40여 명의 한국계 중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고참이 되었다.

연방수사국 요원은 각기 전문 분야가 있을 텐데.

있다. 하지만 처음엔 별 거 다 한다. 난 처음에 하와이로 가서 도망자와 은행 강도를 추적했다. 그리고 조직 범죄와 마약 범죄도 다루었다. 나중에는 LA지국에서 국가 안보를 맡아 북한 문제를 담당하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위장 신분으로 잠입해 비밀 공작을 하는 언더커버(undercover) 일을 했고, 마약 수사도 했다. 워싱턴의 본부로 간 건 1996년이었고, 거기서 일본 파견 근무를 하다 서울로 온 거다. 일본에 있을 때는 몇 차례 한국에 나와 한 달씩 일하기도 했다.

연방수사국의 조직은 어떤가?

연방수사국에는 두 그룹이 있다. 비서와 같은 서포트 피플(support people)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스페셜 에이전트이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LA지국에는 각 부서 요원들을 담당하는 수퍼바이저가 대여섯 사람 있고, 그들을 담당하는 부지국장과 SAC 즉 ‘스페셜 에이전트 인 차지’로 통하는 지국장이 있다. 그 사람도 스페셜 에이전트이므로, 요원 신분은 모두 스페셜 에이전트이다. 상당히 구조가 간단하다. 각 지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국장이 담당한다. 본부는 그들을 도울 뿐, 그들이 수사하는 걸 간섭하는 일은 전혀 없다.

연방수사국과 일반 경찰은 어떻게 다른가?

미국엔 주법이 있고 연방법이 있다. 강도와 살인 같은 주법 위반은 경찰이 담당한다. 그러나 연방 정부가 만든 법을 어기면 우리 연방수사국이 수사한다. 예를 들어, 은행 강도 건은 연방 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은행이 어느 주에 있든 경찰도 담당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수사 영역이어서 우리가 수사하고 우리가 잡으러 다닌다.
연방수사국이 은행 강도 잡는 일말고 또 무엇을 하는가?

과학자나 회계사 들이 저지르는 화이트 크라임(White Crime)이라 불리는 전문적인 지능 범죄와 컴퓨터 범죄를 수사하고, 또 마약 조직과 조직 범죄를 수사하고, 국가 안보를 담당한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그 많은 일을 만 명이 다 한단 말인가?

그래도 늘어난 거다.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8천명밖에 안되었다. 뉴욕은 1천5백명, LA는 6백명, 하와이는 60명 정도인데, 하와이는 그 인원으로 괌까지 맡아야 한다. 어느 주에 가면 요원이 4명밖에 없는 곳도 있다. 몬태나·와이오밍 이런 데선 한 사람이 엄청난 구역을 담당하고 있다. 연방 기관으로서는 연방수사국이 가장 규모가 큰 셈이다. 마약수사국(DEA) 요원은 전국에 2천명이다. 재무부 비밀검찰국(Secret Service) 요원도 2천명 정도이고. 재무부 비밀검찰국은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고 위조 지폐인 슈퍼노트를 수사하고 있다.

한국지국장의 임무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나?

난 이곳에 수사하러 나온 게 아니다. 연방 경찰의 대표이면서 외교관으로 한국 경찰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 FBI 배지 가지고 다녀봤자 여기선 통하지도 않을 테고, 우리가 수사할 대상이 한국과 관계가 있으면 그 점에 대해 경찰이나 검찰, 국가정보원에 가서 요청하는 게 나의 임무이다. 내가 나오기 전에 신문 기사가 미리 나온 걸 보니까, 수사관으로 와서 북한 일을 맡을 거라고 했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연방수사국은 미국 내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지 바깥하고는 상관이 없다. 그런 일은 중앙정보국(CIA)이 한다.

연방수사국이 서울에 지국을 연 것이 한국 경찰에는 어떤 도움이 될까?

여기 나와 있어서 당장 내가 좋지만, 우선 두 나라가 맺은 ‘범인 인도 협정’에 도움이 될 것이고, 국제적인 범죄를 놓고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벌써 경찰청·검찰청·국가정보원이 우리와 교류가 상당히 많아진 것 같다.

한국 경찰에 대한 인상은?

글쎄…. 얘기를 하나 하겠다. 여기 나오기 전에 한국에서 온 경찰서장 열일곱 분을 모시고 연방수사국 본부에서 최신 시설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경찰차에서 컴퓨터하고 연락할 수 있는 전국적인 시스템의 최신 장비였는데, 이것은 미국이 7년 동안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했을 정도로 엄청난 돈이 든 일이다. 얼마 후 나와 보니까 여기에 벌써 그게 다 있었다. 여기서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1년 만에도 된다. 이런 건 무섭다. 그리고 아셈(ASEM)도 계획하고 준비하는 걸 보니까 세계적이더라. 놀랍다.

한국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냥 미국에 대해 얘기하자. 미국은 경찰과 검찰의 일이 구별되어 있다. 한국은 그 점이 미국과 다르다. 우린 수사해 보고하고, 검찰이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한테 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수사는 우리가 계속한다.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그러나 어느 게 좋다 나쁘다고 내가 말하기는 힘들다. 미국은 연방 경찰이든 주 경찰이든 수사는 경찰만 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 와서 보니까 검찰이 정치성을 띠고 있는 사건도 수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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