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붓끝으로 세계를 움직이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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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도 제대로 못쓰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었다. 손·발·화병 따위를 그리는 기본 데생에 툭하면 짜증을 내던 할머니들은 ‘한 많은 삶’을 표현하면서부터 그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7년. 할머니들의 그림은 이제 텔레비전·신문 기사보다, 유엔 인권소위 보고서보다 더 생생한 호소력으로 세계인의 양심을 뒤흔들고 있다.
1995∼1998년 일본 30여 전시장에서 선보인 할머니들의 그림에 일본인들은 경악·분노·감동이 뒤범벅된 찬사를 바쳤다. 급기야는 감상문을 모은 책이 출간될 정도였다(<봉선화에 부치는 고백>). “그림을 보고 내 몸이 찢기는 기분이다.” “<라바울 위안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은 전사한 작은아버지가 있던 곳이다. 지금까지 전쟁의 희생자로 그분을 추도했는데, 그 인자했던 작은아버지도 가해자였다고 생각하니 더 잔혹한 느낌이 들어 괴로웠다.”

지난 9월20일부터 순회 전시를 시작한 미국·캐나다의 현지 언론 또한 ‘나치 전범에 대해서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같은 전범국인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듣지 못했다’며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이같은 호응에 힘입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나눔의 집’은 최근 작품 90여 점을 모아 <못다 핀 꽃>이라는 화집을 펴냈다. 할머니들의 고령을 감안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가능성이 큰 이 작품집의 출판 기념회에는 이용녀(74·왼쪽)·이용수(72) 할머니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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