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불청객, 알레르기 질환 퇴치법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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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낮고 건조한 가을철 실내 공기 요주의… ‘집먼지 진드기’ 서식 환경 우선 없애야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가 나고 말간 콧물이 쉴 새 없이 나와요.”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긁다 보면 피부가 시뻘겋게 부르터요.” “아침에 일어나면 숨이 차고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고, 가래 끓는 기침이 심해요.”

기온이 내려가고 건조해지면서 알레르기 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름 내내 잠잠했다가 기온차가 심해지면서 비염·아토피 피부염·천식 등 알레르기성 증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봄철과 마찬가지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즈음이 알레르기 환자에게는 몹시 괴로운 계절이다. 활짝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으면서 집먼지 진드기가 활동할 환경이 만들어지고, 집 밖에서는 쑥·돼지풀·한삼 덩굴과 같은 잡초의 꽃가루가 날리면서 가을철 알레르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대표적인 알레르기 질환은 비염·천식·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의 3대 증상은 재채기·맑은 콧물·코막힘이다. 감기 증세와 혼동하기 쉽지만 열이나 기침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천식은 기침·가래·천명(가슴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는 증세)·호흡 곤란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서 네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침만 계속하거나 가슴이 답답한 증상을 보이는 정도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따라서 초기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아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아토피 피부염은 알레르기 질환 중 가장 어렸을 때부터 나타나는 증상으로 보통 영아기 태열로 시작한다. 심한 가려움증 때문에 끊임없이 긁어서 피부가 손상되고, 이로 인한 2차적 세균 감염이 일어나기 쉽다. 아토피 피부염 증세가 오래되면 피부가 두꺼워지고 흉터가 남게 된다. 주로 목·겨드랑이·무릎·팔꿈치 등 접히는 부위에 나타나는데, 손등을 비롯한 전신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토피 피부염은 대부분 30세쯤 자연 치유된다.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은 유전과 환경이다. 가족 중에 알레르기 질환자가 있으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 중 한쪽에 알레르기 질환이 있으면 자식 둘 가운데 하나는 알레르기 질환에 걸린다. 부모 모두 알레르기 질환을 갖고 있으면 자녀가 발병할 확률이 75%로 높아진다.

유전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이 환경이다. 유전적으로 알레르기 체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알레르기 항원에 노출되지 않으면 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기 오염 물질이 증가하고 아파트처럼 환기하기가 좋지 않은 에너지 절약형 건물이 늘어나면서 알레르기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아파트에서 살던 주부 안혜경씨(35)는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여섯 살 난 아들의 아토피 피부염이 크게 줄었다”라고 말했다. 구미에서는 1980년대까지 5~10%이던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1990년대에 10~15%로 증가했다. 한국도 비슷한 수치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SO2(아황산가스)·NO2(이산화질소)·O3(오존)·디젤 엔진 배기가스 혼합물 등이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집먼지 진드기이다. 집먼지 진드기는 집먼지 속에 살고 있는 곤충으로 사람의 비듬이나 각질을 먹고 산다. 이불과 같은 침구류와 소파·카펫·커튼·봉제 인형 등에 붙어 있다. 집먼지 진드기용 진공 청소기로 청소하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면 알레르기 증세를 한층 완화할 수 있다(상자 기사 참조).

박해심 교수(아주의대·내과)는 알레르기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는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원인 물질을 찾아내고 장기적인 치료 대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천식은 폐기능 시험과 기관지 유발 시험으로 진단할 수 있다. 비염은, 병력 조사를 통해 알레르기성 비염이 의심되면 피부 반응 검사와 코 점막 검사를 하여 원인 항원을 찾는다. 아토피 피부염은 눈으로도 쉽게 식별되기 때문에 주로 특징적인 증세를 살펴보거나, 피부반응검사로 진단한다.

알레르기 환자에 대한 치료는 크게 회피 요법·약물 요법·면역 요법 세 가지로 나뉜다. 원인 항원과 자극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회피 요법이다. 주변 환경에서 원인 물질을 제거하면 좋지만, 집먼지 진드기나 꽃가루의 경우 ‘완전 박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회피 요법만으로 증상을 치유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일반적인 치료법은 약물 요법이다. 비염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는 알레르기 염증을 매개하는 물질인 히스타민의 작용을 차단하는 항히스타민제를 가장 널리 사용한다. 치료 효과가 크고 가려움증·재채기 증상을 크게 호전시킨다.

아토피 피부염에는 피부에 바르는 부신피질 호르몬제가 널리 쓰인다. 그러나 부작용이 생기기 쉬워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부신피질 호르몬제 복용약이나 주사제는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광훈 교수(연세의대·피부과)는 “아토피 피부염은 아직 만족할 만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주변 환경 및 생활 습관에서 악화 요인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천식이 심할 경우에는 부신피질 스테로이드 제제를 포함한 기관지 확장제로 숨찬 증상을 잠재운다. 최근에는 흡입제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약을 먹는 데 따르는 위장 부담이나 전신 부작용의 위험 없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회피 요법과 약물 치료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는 면역 치료를 한다. 원인 항원을 낮은 농도에서부터 점차 양을 늘리면서 주사해 외부에서 항원이 유입되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작용 기전이나 치료 효과, 부작용 등에 대해 논란이 많기 때문에 널리 쓰이는 편은 아니다.

알레르기 질환은 불치병은 아니지만 획기적인 치료법이 발견될 때까지는 평생 인내심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 이철희 교수(서울대병원·이비인후과)를 비롯한 관련 의학자들은 유전공학 기법을 도입한 알레르기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어 실제 치료에 쓰이려면 최소한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철희 교수는 “알레르기 질환은 한번에 나을 수 있는 특효약이나 비방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문의와 상의해 성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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