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인에게 '구원의 소리'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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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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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서현동에 있는 커피·케익 전문점 ‘카페 라리’ 분당점은 해마다 5월·9월에 하루씩 청각 장애인 진료 공간으로 변한다. 가을이면 보청기 전문가인 재미 교포 제이신씨(미국 로스앤젤레스 신보청기 원장)가 청각 장애 어린이·청소년의 청력 검사를 하고, 봄이면 청력에 맞는 보청기를 들고 와 끼워주는 행사가 열린다. 보청기 가격이 한 짝에 2백만원이 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한다면, 돈이 없어 소리를 못 듣는 청각 장애 어린이·청소년에게는 ‘구원의 소리’와 다름없다.

1996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를 주관해온 이들은 카페 라리 윤명숙 사장(오른쪽)과 그녀의 남편 최순길씨(청각장애인돕기회 회장)이다. 로터리클럽 회장을 하던 1992년부터 ‘얼굴 기형 어린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시켜준 남편은 이후 청각 장애인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그의 부인은 카페 라리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청력 검사와 보청기 구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감당해 왔다. ‘사랑의 보청기 행사’라는 이름으로 소리 없이 진행하던 부부의 선행이 주변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들과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뜻을 모아 청각장애인돕기회라는 단체가 탄생했다.

지난 9월25일 열린 행사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온 어린이·청소년 11명이 청력 검사를 받았다. 이들은 내년 5월이면 제이신씨가 제작해 오는 보청기를 끼고 소리를 듣게 된다.

최순길 회장이 청각 장애인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민 이유는, 그 자신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중이염을 앓았다는 그는 15년 전부터 ‘귓속 보청기’를 끼고 다닌다. 소리 못 듣는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에, 최회장은 미국에서 만난 보청기 전문가를 가정 형편이 어려운 국내 어린이·청소년 들과 연결해 주었다.

최회장 부부의 도움을 받아 소리를 되찾은 어린이·청소년은 90명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작게나마 봉사를 하면, 남을 돕는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활성화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 행사를 벌여 왔다. 재단을 만들 형편은 못되지만, 앞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사랑의 보청기 행사’를 펼쳐 가겠다”라고 최회장은 말했다.

성우제 기자
영화 주간지 <씨네 21>은 독자에게 보내는 편집장의 편지로 시작해서 정훈이의 썰렁한 만화로 끝난다. 조선희씨(40)는 때로는 너무 맵고, 때로는 대책 없이 축축한 편지를 보내던 바로 그 편집장이었다. 호시탐탐 소설가로 변신하려고 꿈꾸던 조씨는 6개월 전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어느 새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에세이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다.

“처음 책을 쓰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시큰둥했다. 게다가 에세이라니. 하지만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면, 그리고 다시는 그 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라면 책을 핑계 삼아 뒤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악명 없는 유명세는 드물지만, 조선희씨는 특히 요주의 인물이었다. ‘사명감에 불타는 일 중독자’가 그녀의 이미지였다. 그 독기로 그녀는 <씨네 21>을 창간 2년 만에 ‘가판 1위’로 끌어올렸다.

<정글에서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는 그 신화의 뒤켠을 더듬는다. 녹록치 않은 직업인 기자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사회의 문턱에서 무릎이 깨져 울었드랬지’와 같은 대목은,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 앞에서 남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을 ‘커리어 우먼’의 속사정을 일러준다. 연하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는 시원한 샘물 같고, 독종 편집장으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영낙없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이제 그녀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막간에 두어 편의 소설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할 참이다. 분초를 다투는 기자로 19년을 살아온 그녀는, 2년짜리 계획표를 들고 옛 동료들을 약올린다. “너 이렇게 스케일 큰 계획표 짜본 적 있어?”

노순동 기자
1992년 10월28일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한 여인이 주한미군 병사에게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윤금이씨. 그녀는 스물여섯 짧은 삶을 월세 4만원짜리 작은 방에서 끝마쳤다. 사회에서 멸시받는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씨는 숨진 뒤에야 많은 벗을 가지게 되었다.

김종욱씨(29)가 윤씨 사건을 접한 것은 대학 새내기 때. 자궁에는 콜라병이, 항문에는 우산대가 꽂힌 채 살해된 윤씨의 사진을 보며 김씨는 미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모부가 주한미군 장교여서 김씨에게 미국은 아름다운 나라였을 뿐이다. 하지만 윤씨 사건을 계기로 김씨의 시각은 불평등한 한·미 관계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운동본부)가 주최하는 금요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매년 10월28일에 열리는 윤금이씨 추모제에도 개근했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 사원이 되어 맞는 이번 추모 행사에도 반드시 참여할 예정이다. 사회 생활을 핑계로 금요 집회에 함께하지 못했던 김씨는 운동본부로부터 표를 100장 받아왔다. “이번 추모제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까지 참여시키겠다.” 여행사에 취업한 김씨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10월28일 약속은 모두 오후 5시 연세대 대강당 앞으로 잡아 두었다(추모제 문의 02-744-1211).

고제규 기자
서울 청담동에 자리 잡은 소극장 유씨어터에 가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킬러를 만날 수 있다. 총을 겨누며 소름이 오싹 돋을 만큼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난 십자수를 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다보면 마음이 평온해지지”라는 대사로 이내 관객을 ‘무장 해제’하는 젊은 배우 김명원씨(26·극단 유).

그는 요즘 헤럴드 핀터의 <킬러스>(11월12일까지)에서 살인청부업자 벤을 연기한다. 냉혹한 살인청부업자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내는 그의 연기는 신인답지 않게 차가움과 따스함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배우라면 악인에서 선인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어떤 역이 주어지든 그 역에 딱 맞는 배우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김씨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부터 연기 실력을 다졌다. ‘악인에서 선인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는 기계체조·택견·보디빌딩 따위로 몸을 단련했고, 소설과 영화를 섭렵하며 ‘여러 가지 색깔의 영혼’을 만들기에 젊은 시절을 바쳤다. 수년에 걸친 그의 노력은 ‘극단 유’ 단장 유인촌씨가 올 초 입단한 풋내기 배우를 2인극 주연으로 발탁하는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첫 열매를 맺었다.

안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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