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암연구학회장에 선출된 홍완기 박사 “무조건 담배부터 끊으세요”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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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선 뒤에도 암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암에 의한 사망률은 1990년대 이후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인류의 22.8%는 암으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전자 우편을 통해 미국 암 연구학회 회장인 홍완기 박사(58)에게 최근 암 연구의 흐름과 정복 가능성에 관해 물었다. 미국 텍사스 M.D. 앤더슨 암 전문병원 두경부·흉부 종양내과에서 활약하는 홍박사는 암의 전이와 재발을 막는 항암 예방요법 창시자로,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어떤 암을 연구·치료하십니까?

두경부·흉부 종양내과에서는 상부 소화기·호흡기 계통의 암을 치료합니다. 즉 폐나 두경부에 발생하는 폐암·비인강암·구강암·하인두암·후두암을 연구하고 치료하지요.


암의 재발과 전이를 미리 차단하고, 암이 나타나기 전에 징후를 미리 발견하는 항암 예방요법을 주창하셨는데, 어떤 방법으로 암의 징후를 알아낼 수 있습니까?

암은 대개 발생하기 전에 전암 병변(암 전 단계 병변)이 발견됩니다. 구강 백반증처럼 의사의 진찰이나 조직 검사로 비교적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전암 병변도 있습니다. 전암 병변을 찾아내면 예방과 치료가 훨씬 쉽습니다. 현미경을 사용한 조직 검사에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라도, 세포 유전자를 검사해 초기에 암 발생 위험 요인을 찾아내는 연구가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유난히 폐암과 위암에 잘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폐암 사망의 80%는 흡연에서 기인합니다. 구미에 비해 흡연자가 많은 한국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 발생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35세 남자가 담배를 하루 25개비씩 매일 피울 경우 75세 이전에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약 13%라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흡연자 본인 외에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주위 사람까지 폐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또 담배는 폐암 외에도 두경부암·식도암·방광암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며, 관상동맥 질환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의 원인입니다. 흡연 외에도 석면 및 방사선 노출, 비타민 A·C·E 섭취 부족도 폐암을 일으킵니다. 위암은 세균의 일종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감염이 주원인 것으로 최근 연구되고 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는 위 점막에 손상을 주어 만성 위염·십이지장궤양을 초래합니다. 이 세균의 감염률은 미국이 30% 수준인데 동양이나 중남미에서는 전인구의 80% 이상입니다. 흔히 이 세균에 감염된 음식물을 섭취하면 위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질산염이 함유된 음식, 소금에 절인 고기나 생선 과다 섭취, 비타민 섭취 부족, 흡연도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위암과 폐암 치료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또 우리나라의 암 치료 수준은 세계에 비해 어떻습니까?

암 치료율은 암의 진행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위암이나 폐암 모두 외과적 수술로 완치될 수 있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할 만큼 병세가 악화한 뒤에는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하는데, 이 경우 치료율이 매우 낮습니다. 위암은 초기에는 95% 이상 완치되고, 중기에는 40~50% 정도 치료율을 나타냅니다. 물론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는 완치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폐암은 치료율이 다소 낮아 초기의 경우 60~80%, 중기에서는 5~30% 가량 완치됩니다. 한국의 암 치료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습니다. 위암 등 한국에서 더 흔한 일부 암의 치료 수준은 선진국보다 높아요. 그러나 암 치료 발전의 토대가 되는 기초의학 부문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암에 대한 기초 연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 개발된 획기적인 암 치료 방법은 무엇입니까?

탁센 계열의 항암제처럼 종전과 다른 항암 화학요법 약제가 개발되어 폐암 등에서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암 발생과 진행에 관여하는 암 유전자 억제, 암 발생을 막는 항암 유전자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하는 유전자 치료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우리 과에서 종양 혈관 형성 억제제로 임상 실험 중인 엔도스타틴도 좋은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합니다.


암 정복 시기를 놓고 여러 가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암 전문의로서 언제쯤 암이 정복될 수 있다고 전망하십니까? 암 정복을 100m 달리기에 견준다면 현재 치료 수준은 몇 m쯤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십니까?

암 예방·조기 진단·치료는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지만 폐암·위암·유방암 등 흔히 발생하는 암의 사망률은 크게 감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간의 사망률 감소도 치료보다는 조기 진단이 발전한 덕분입니다. 암은 같은 종류의 암에서조차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것이 암 정복으로 이어지기는 사실상 힘듭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반드시 암을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암 치료 수준은 50m쯤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얼마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홍박사팀으로부터 림프절 전이암 치료를 받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회장은 건강을 회복한 것입니까?

이회장은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후 방사선 검사 등으로 관찰해 본 결과 암 병변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관찰해야 합니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어떤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합니까?

당장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암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은 피하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해야 합니다. 비타민이 함유된 과일이나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귀국해 우리나라 암 연구 및 치료에 이바지할 계획이 있습니까?

제가 M.D.앤더슨 암 전문병원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암 전문의와 연구자 50여명이 우리 과에서 연수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간 연구자가 이곳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암 치료와 연구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인 6~7명이 우리 과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의 암 연구 및 치료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암을 치료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까?

진행성 후두암 환자에게 수술 대신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시행해 성대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후두 제거 수술을 하면 성대를 잃게 되는데, 제가 개발한 방법으로 치료하면 성대를 잃지 않고도 수술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연구가 학계에서 인정받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실렸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유난히 기쁜 일이 많았습니다. 차기 미국 암연구학회장으로 선출되고, 버처넬 상과 카노프스키 상을 받았습니다.


세계 암 연구의 리더 격인 미국 암연구학회장으로서 가장 중점적으로 시행할 사업이나 계획은 무엇입니까?

암을 정복하는 데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젊은 암 연구자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좋은 연구 업적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암 연구기금을 늘리고, 암 예방 사업에 집중 투자할 것입니다. 기초 암 연구가 환자 치료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직적접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임상ㆍ기초 연계 연구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한국ㆍ일본 등 다른 나라의 암 연구 계획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연구 성과가 배치되도록 힐 것입니다.


암 전문의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높은 사망률을 나타내는 폐암과 두경부암을 예방할 화학요법을 개발해 암 정복의 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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