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서 사이버 시사비평가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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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싫다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돼요. 공산당이 싫다고 말한 이승복은 공산당한테 죽었고, 교황이 싫다고 말한 종교개혁가들은 마녀사냥을 당했잖아요. 물론 좋다는 말도 안돼요. 우리나라에선 공산당이 좋다고 말하면 당장 잡혀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돌려서 말해요.”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말이다.

중학생답지 않게 조숙한 윤은호군. 그는 얼마 전까지 왕따였다. 인터넷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 왕따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어엿한 사이버 시사비평가이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의 중고생 섹션 ‘1318’ 난에 칼럼을 올리고 있다.

‘선영이를 찾는 사람은 선영이로 망한다’며 광고 목적으로 사랑이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고, 시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임은경(011 TTL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에 네티즌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는 또 이용자가 적다고 에스컬레이터를 꺼두는 인천 지하철을 고발하고, 목 좋은 지하철 입구에서 자리 싸움을 하는 총선 입후보자들을 조용히 훈수하기도 했다.

어눌한 말투, 불분명한 발음.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 나이답지 않게 뼈 있는 말을 하는 그에게 더 이상 왕따의 어두운 그림자는 없다. “글을 읽는 것은 그 사람 마음을 읽는 것, 인터넷에는 왕따가 없다”라는 그의 다음 목표는 바로 자신이 왕따 당한 경험을 밝히고 왕따의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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