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시인이 전하는 ‘따뜻한 사람 이야기’
  • 전주·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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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학씨(38)는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전주 지역의 사회운동가이자 시인이다. 문씨의 청춘은 상처로 얼룩진 1980년대 세대의 전형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89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과 관련해 수배령이 내려져 부산에서 만 4년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위장 취업을 해 노동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수배 시절 결혼식도 못올린 채 첫아들을 낳았고, 틈틈이 써온 시를 1989년 <노동문학>에 발표해 등단했지만, 상패를 받으러 상경할 수조차 없었다. 1993년 사면 복권된 뒤에는 전세방에 살면서도 오갈 데 없는 비전향 장기수 출신인 전창기씨(88)를 부모처럼 모시고 살았다.

젊은 시절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문씨는 최근 등단 10년이 넘어서야 첫 시집 <지는 꽃 뒤에는>을 펴냈다. 상처로 얼룩진 시대를 정리하고 동학혁명 정신 계승 운동에 몸바치면서 이제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시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와 평등의 가치들이 얼마나 실현되고, 민주화와 통일 과제들이 정말 해결됐는가를 여전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386 세대의 원조 격인 문씨가 정치권 진입에만 몰두하는 지금의 386 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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