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공천 탈락한 김상현 의원 “동교동 가신들이 DJ 망쳤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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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들은 김대통령을 망쳐놓더니 이제는 386 세대들 마저 자기들의 똘마니로 만들고 있어요. 386 세대들은 지도부 경선이나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 아무런 주장도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똘마니라고 거야.”
낙천이 결정된 다음날 김상현 의원은 기자회견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버렸다”라면서 민주당과의 결별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어 광주로 내려가 망월동 5·18 묘역을 참배한 후 “여론조사를 해 서대문이나 광주에서 출마하겠다”라고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혔다. <시사저널>은 그 다음날(2월19일) 김의원을 만났다. 그는 하루 만에 예전의 낙천주의자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동교동계 가신들을 소리 높여 비난하면서도 DJ에게만은 비판의 톤을 낮추었다. 광주 출마를 염두에 둔 듯했다.


어디에서 출마할 겁니까?

제 정치적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영령들에게 여쭙고자 5·18 묘소를 찾았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동지들이 저더러 광주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김대중 선생이 3년 후면 퇴임하는데, 그렇게 되면 호남의 지도자는 한 사람도 없지 않느냐, 당신이 나서야 한다, 그러는 거에요. 현재까지는 서대문 갑 출마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광주 출마가 동지들의 바람이고, 또 제 스스로 확신이 든다면 광주에서 출마할 것입니다.


공천 탈락이 확정되던 날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대통령과 저는 1950년대부터 형님 동생으로 지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누이동생이 폐결핵에 걸려 치료도 못 받고 죽었을 때 관을 들고 갈 사람이 없어서 제가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묻었어요. 강원도 인제 선거(DJ는 1961년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도 제가 다 치렀어요. 서숙(좁쌀)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때 생각을 했어요. 지금 동교동계 가신들은 그때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왜 김의원을 버렸다고 보십니까?

싸우기도 하고 의견을 말씀드리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게 대통령한테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야.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김상현이의 공천은 대통령이 결정한다, 너희들이 뭘 아느냐, 그랬어요.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5, 6공 사람들, 군사 정권에 기여한 사람들까지 공천을 주면서 김대중 정권이 이 김상현이한테 공천을 안 줘요, 허허.


호남 지역 무소속 출마자들과의 연대도 고려하고 있습니까?

김대중 대통령한테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 좋아요. 직접적인 연대는 안 할 겁니다.


허주·이기택 고문 등 한나라당 중진들과 함께 신당을 창당한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광주에서 출마한다면 신당 창당은 안 합니다.만약 서울 출마를 결정한다면 장기표 동지를 비롯한 여러분들과 여러 가지 검토를 할 수 있겠지요. 한나라당 중진들 모두 저와 가까운 분들이기 때문에 연락이 오면 만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광주를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뭡니까?

광주 시민들이 저를 뽑아준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가신 정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저는 김대통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국부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민주당측이 김의원의 광주 출마가 DJ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가신 정치의 한계 때문입니다. 가신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김대통령을 망쳐놓더니 이제는 386 세대들마저 자신들의 똘마니로 만들고 있어요.


386 세대가 가신들의 똘마니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적어도 민주화운동을 한 세대라면 확실한 자기 주장이 있어야지. 국민들은 사당 정치·보수 정치가 청산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젊은이라면 그런 전략적인 비전을 가지고 정치권에 들어왔어야지. 그들은 지도부 경선이나 당내 민주주의에 대해 아무런 주장도 한 적이 없어요. 그게 뭡니까. 그래서 가신들의 똘마니라는 거야. 전 그것을 서글프게 생각하는 거요. 그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뭘 할 거요? 박수 치고, 국회에서 대통령 비판하면 소리나 지르고 이런 거나 배울 사람들이란 말이요.


원내에 진출한 다음에는 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공천 받아야 하니까 지금은 도리 없다고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들어가서도 똑같아요. 그것은 변명이야.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대상자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죄 판결을 받은 저를 포함시킨 것은 시민운동의 오만입니다. 저를 제거하려는 음모에 총선연대가 이용되었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공개 토론을 요구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들만이 공정하고 자기들만이 정당하다는 독선에 빠져 있어요. 리영희 교수, 함세웅 신부, 고 은·신경림 시인 같은 재야의 원로들이 전부 김상현이 명단에 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민주당은 개혁성·전문성 등 여섯 가지 공천 기준을 설정했는데요, 스스로 그 기준에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15대 때 환경 법안만 35개를 냈어요. 그 중 14개가 통과되었어요. 제가 속한 의원단체는 6년 동안 최우수 연구단체상을 받았어요. 입법 활동·연구 활동·정책 개발 모두 잘했어요. 개혁성도 그래요. 솔직히 386 세대보다 제가 개혁적이라고 봅니다. 정치 개혁·정당 민주화·공천 민주화에 대해 저처럼 분명한 목소리를 내온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DJ가 애당심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처럼 애당심 많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국민이 원하는 민주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국부로 만들자, 이것보다 더한 애당심이 어디 있어. 정당을 사당으로 만들고, 대통령을 속이고 ,국민의 소리를 전하지 않아 불행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사람들만이 충성심이 있는 사람인가?


김의원은 전형적인 구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많은데요.

저는 창조적이고 개혁적이고 항상 미래 지향적으로 살아 왔어요. 기회 속에서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요. 그런 제가 왜 구정치인이요? 나이나 선수(選數)로만 신구 정치인을 가르는 것은 잘못된 거요.


무소속 출마를 밝힌 이후 청와대에서는 연락이 왔습니까?

한광옥 실장이 만나자는 걸 거절했어요. 총선이 끝난 다음 대통령을 찾아뵐 겁니다. 그게 대통령을 대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선된다면 다시 민주당에 입당할 생각입니까?

대통령만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총재나 자민련 총재도 다 만날 것이오. 오픈 마인드로 말이오. 정당 정치·의회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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