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진단, 값싸고 바르게 받는 법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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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검진, 꼼꼼히 받으면 성인병 예방…건강 증진 프로그램 있는 병원 선택해야
풍경 하나. 술이 덜 깬 눈으로 컴퓨터를 두드리던 엄 아무개 과장. ‘왜 이렇게 술이 안 깨지? 전에는 아무리 마셔도 아침만 되면 멀쩡했는데.’ 거울 앞에 서서 각진 얼굴을 들여다보는 엄과장. ‘어라, 얼굴까지 까맣네. 이거 혹시 간경화 아냐?’

풍경 둘. 화장실에서 손을 씻던 미스 황. ‘왜 자꾸 손이 저리고 붓지?’ 손을 비비며 인상을 찌푸리는 미스 황. ‘혹시 야근이 심해서 신장이 나빠진 게 아닐까. 아니면 간이?’

봄이 가까워 오면서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엄과장이나 미스 황처럼 ‘건강 염려증’에 걸려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걱정만 하다가 몸이 조금 나아지면 또다시 바쁘고 고된 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두드러지게 자각 증상이 나타나면 그제야 허겁지겁 병원 문을 두드린다.

다행히 최근 들어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전에 종합건강진단(종합검진)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 국제의료센터 수석 의사인 하야시 시게키에 의하면, 사람은 40세 무렵부터 몸에 몇 가지 이상을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그 숫자가 점점 느는데, 70세에는 보통 7,8가지 이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이상은 곧바로 성인병과 연결되는데, 문제는 성인병이 거의 자각 증상 없이 뿌리를 내린다는 데 있다. 종합검진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암·고혈압·당뇨 같은 질병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발견해, 건강을 유지토록 도와주는 것이다.


종합검진, 위암 조기 발견율 높아

실제 종합검진은 위암·폐암·대장암·고혈압 따위 성인병을 조기 발견해 내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삼성병원 이태열 종합건강진단센터 소장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래 방문으로 진단한 것보다 종합검진이 훨씬 더 빨리 위암을 발견했다. 1995∼98년 강북삼성병원 종합건강진단센터에서 발견된 위암 환자 39명과, 1997∼98년 같은 병원 내과·외과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1백86명을 비교한 결과, 1기 이내의 위암을 조기 발견한 비율이 종합검진이 외래 진료보다 2배 더 높았다.

위암은 발견 뒤 5년 생존 확률이 1기 90%, 2기 70% 정도이다. 3, 4기는 생존율이 급격히 하락하는데, 발견 뒤 1,2년 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위암은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평소 피로감을 자주 느끼고, 얼굴색이 창백하거나 두통이나 현기증이 있는 사람은 종합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를 때 쉽게 숨이 차는 사람, 갈증이 심하고 소변을 자주 보는 사람, 자주 감기에 걸리는 사람, 변비·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 가족 중 불치병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1년에 한번쯤 종합검진을 받는 것이 몸에 이롭다고 밝혔다.

종합검진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받는 검진이 어떤 질병을 예측하는 검사이며, 검사 결과 수치가 이상치인지에 대해 미리 알아두면 좋다. 이외에도 몇 가지 점을 고려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우선 사전에 배부되는 검사에 관한 주의 사항을 잘 읽고, 검사 전날 과음·과식을 피해야 한다. 또 지정된 시간에 저녁 식사를 마치는 등 지시 사항을 어김없이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건네 받은 문진표는 꼼꼼하게 기재해서 제출한다. 그러나 검사를 대비해서 갑자기 생활 태도를 바꾼다든지, 식사 양이나 내용을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건강 상태와 다른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강성심병원 윤종률 가정의학과장은 종합검진 전에 가능하면 의사와 상담하라고 권했다. “가정의학과나 전문의를 찾아 건강 상태를 체크한 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결과가 좀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나온다.”

또 하나 종합검진 효과를 높이려면 특진을 고려해볼 만하다. 서울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갱년기 검진·남성 기능 검진·청소년 검진 같은 선택 건강 진단을 운영 중이다. 이같은 진단은 경비와 시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들만 검사해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한 군데 병원에서 꾸준히 검진하는 일도 중요하다. 병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경과와 변화 여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합검진을 받고 난 뒤의 태도이다. 만약 종합검진에서 이상이 드러났다면 질병 발생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본인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건강 위험 요인을 없애는 생활을 해야 한다. 흡연·과음하는 사람과 체중 변화가 급격한 사람, 그리고 지속적인 위장 장애가 있는 사람은 각종 만성 질병 위험이 높으므로 주치의와 정기 상담을 하고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B형 간염 보균자는 6개월에 한번씩 간 검사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40세 이후 여성의 경우 매년 자궁암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유방암 검사는 나이에 따라 1∼2년에 한번씩 정기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오른쪽 표 참조).

하지만 종합검진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실망하거나 낭패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작가 이 아무개씨(53)도 몇 달 전 그 같은 경험을 했다. 이씨는 B형 간염 보균자였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 간이 쉴 틈이 거의 없었다. 쉰이 넘어서자 피곤한 날이 많아졌고, 이씨는 은근히 간염이 걱정되어 1년에 한 번씩 병원에서 종합검진과 함께 간 검사를 받았다.

검진 결과는 늘 ‘이상 무’였다. 간혹 GPT(간장에 함유되어 있는 아미노산의 생성을 돕는 효소) 수치가 높게 나와 의사가 술을 줄이라고 얘기했지만 이씨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영부영 검사하는 검진센터 피해야

계속해서 술을 마시던 어느 날, 이씨는 갑자기 옆구리가 뻐근해옴을 느꼈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간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이씨는 두어 달 전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는데 이럴 수 있느냐고 항변했지만 의사의 대답은 차가웠다. ‘종합 검진 결과에 이상이 없다고 해서 현재 아무 병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건강하리라는 뜻도 아니다. 검사한 항목에서 지금 이상 소견이 없다는 뜻일 뿐, 앞으로는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한다’라고 대답했다. 이씨는 요즘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쥐고 있는 간암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이씨처럼 지나치게 종합검진 결과를 믿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종합검진 결과를 맹신하는 데서 생긴다.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마치 ‘건강 보증 수표’처럼 생각해, 또다시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워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점은 일부 검진센터들의 검진 방법에 있다. 종합검진은 의사가 개인의 나이·성별·건강 위험 요소 들을 일일이 확인한 뒤 꼭 필요한 검사만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병원에서는 30대와 50대의 검사 항목이 똑같은가 하면, 의사가 환자와 눈 한번 마주쳐 보지도 않고 기계에 의존해 검사하는 경우도 있다. 또 ‘3시간 검진이 30년 건강을 보호한다’는 식의 거짓 정보를 흘리며, 종합검진 항목을 패키지 상품화해 필요하지도 않은 검사를 받게 한다. 의료인들은 이같은 검진이 ‘비용 부담은 늘어나고 정확성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종합검진 체계를 선진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다른 점이 많다. 특히 검진 시간. 선진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처럼 하루 이틀에 검사를 끝내지 않는다. 의학 검사는 기본이고 영양사·운동 처방사·임상 심리사와 함께 짧으면 사흘, 길게는 몇 주간 체중 조절·스트레스 조절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빠르면 3시간, 늦어도 하루 이틀 안에 검사가 끝난다. 때문에 그만큼 오진할 확률이 높고, 환자의 몸 상태 전체를 파악하는 데 소홀하다.


싸고 정확하게 검진하는 곳을 찾아서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병을 예측하는 종합검진을 안 받을 수는 없다. 이제까지 결과를 종합해 보면 종합검진은 사람에게 피해보다 이로움을 더 주는 의료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합검진은 어디에서 받아야 비교적 정확하게 받을 수 있을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박사는 우선 집에서 가까우면서, 담당 의사의 세밀한 진찰과 충분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인지 확인하라고 충고했다. “건강 증진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영양 상담, 운동 처방, 금연, 체중 조절, 스트레스 조절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면 좋다.” 단지 검사 항목이 많고 싸다는 데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의료인들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는 ‘믿을 수 없는’ 건강진단센터가 꽤 있다. 종합검진 수요자가 급격히 늘면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검진센터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검진센터는 의사의 면허증을 빌려 이름만 걸어놓고 영업하기도 한다. 즉 겉으로는 의사가 운영하지만, 실질적으로 임상 병리 검사 자격증을 가진 주인이 운영하는 것이다.

박용우 박사는 “요건을 못 갖춘 데서 검사를 받으면 진단 결과에 대한 정확한 판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수치만으로 대충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지나치게 과신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종합병원같이 진료 성과가 높은 곳에서 검진을 받는 것이 오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종합검진 비용은 10만원에서 40여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하고, 1박2일짜리 숙박 검진을 받으면 검진비가 훌쩍 오른다. 일부 병원에서는 부부 검진 할인 등 갖가지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선택은 자유. 종합검진을 받고 싶은 사람은 집 근처 병원을 수소문하거나, 인터넷에 들어가 건강·의학·병원 사이트를 찾아보면 자기가 원하는 검진센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종합병원·대학병원에 견주어 비교적 검진비가 저렴한 검진센터로는 보건복지부 산하 단체인 한국건강관리협회가 있다. 검사 항목이 간장·신장 초음파 검사, 영양 상담 등 30여 가지로 일반 병원 검진센터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검진비는 절반 수준인 18만원(여자), 12만원(남자)이다.한국건강관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상담 과정을 통해 중요도가 낮은 것들은 빼기도 하고, 또 다른 항목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한국건강관리협회는 현재 서울 2곳을 포함해 전국에 15개의 검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의 서울 921-0476(강북) 601-7161(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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