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위원장 노사정위원회 “정부 안에 노사정위 방해 세력 많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9.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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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와 ‘사’가 떠난 노사정위원회가 외로이 항해하고 있다. 김원기 위원장은 곧 재건되리라고 말하지만, 최근의 파업 사태를 보면 파국·위기 따위 낱말들이 떠오른다. 1년간 노사정위를 끌어온 김위원장은 노동계 쪽보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도 존중하지 않는‘정부내 방해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첫째로 실업자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법무부를 지목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병행 발전’이라는 모토에서 변화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두뇌 집단이 ‘복지’라는 축을 선택하도록 건의했고, 대통령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일방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복지’를 중시하는 제3의 길로 변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김대통령의 노선과 정치 철학은 사회통합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이었어요. 노사정위원회를 만든 것도 다 그러한 맥락입니다. 다만 국제통화기금의 요구가 정부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한 환경이었지요. 지금 김대통령은 구조 조정이 끝난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이 신자유주의 일변도이면 바람직하지 못하고, 여기에 사회통합적인 흐름이 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노사정위가 ‘기능 정지 상태’에 들어간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노사정위는 신자유주의적 방법과 사회통합적 방법을 절충하고 조화하는 장입니다. 그러나 말이 절충과 조화이지 쉽지가 않습니다. 노동계는 철저하게 사회통합적인 방법을 원해요. 이를테면 개혁과 구조 조정을 노사정위의 틀 안에서 다 결정하자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사용자는 생각이 다릅니다. 개혁과 구조 조정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노사정위에서 정할 수는 없어요. 노사정위의 기능 정지 상태를 맞이해 아쉬운 것은, 우리에게 축적된 경험이 없다는 점입니다.

노사정위 ‘재건’을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그동안은 노사정위원회가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활동해 왔습니다만, 법적 근거가 없었어요. 여기서 결정되는 것은 일종의 신사 협정이었고, 집행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시키는 노사정위원회법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대화가 재개될 겁니다. 그동안 해온 대화가 있으니까 5월 중에는 민주노총만 빼고 노사정위가 재건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면 민주노총도 생각을 바꾸겠죠.

노사정위 자체가 70년대 유럽형 모델인데, 이미 유럽의 역사는 노사정 합의 모델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적 방법만으로는 안됩니다. 사회통합적 방법을 병행해야 합니다. 유럽 모델을 따왔죠. 그러나 유럽의 실업과 우리의 실업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실업이 생존권 문제 아닙니까. 그런 실업 문제를 신자유주의적 방법에만 내맡기면 우리 나라에서는 유럽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부작용, 가령 심각한 계층 갈등과 사회적 마찰이 생깁니다. 그래서 노사정위를 하는 겁니다.
일부 학자들은 김대통령이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노사정위라는 기구를 노동계급과 재벌의 반발을 막는 ‘방어선·저지선’ 개념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좀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의견을 수용하는 구조 조정을 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어선으로서의 효과가 부수적으로 생길 수는 있지요. 앞으로는 노동자의 의욕과 창의력이 발휘되어야 기업과 사회가 경쟁력을 갖습니다. 그러한‘진지’로서 노사정위의 역할이 있습니다. 정리 해고 과정에서 ‘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를 이용했다고 보면 안됩니다.

지난해 5월 2기 노사정위를 맡을 때 지금 같은 사태를 예견하셨습니까?

예견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같은 견해였어요.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노사정위의 역사는 해체와 복원의 반복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실업 사태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축적되지 못했습니다. 노사정위가 이런 초유의 사태를 헤쳐 가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노동계는 ‘5월 총파업’을 향해 한 단계씩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바꿔 입듯이 노동운동의 방향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노동운동도 책임 있는 자세로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와 재계도 잘못했어요. 노사정위 협의를 거치는 것이 마치 구조 조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 귀찮은 과정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양쪽에 다 문제가 있어요.

정부 안에 노사정위 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서요?

제가 관계 장관들과의 회의에서 그런 얘기를 몇 번 했습니다.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도, 그것은 법적인 근거나 강제력이 없습니다. 정부의 관계 부처가 따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방해하는 세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실업자 초기업 단위 노조 문제가 그래요. 노사정위에서 만장 일치로 합의했어요. 정부 대표도, 심지어 재벌 대표도 합의한 거에요. 그런데 법무부가 반대해서 아직까지 행정부안으로 제출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법무부만 반대하느냐? 정부내 경제 부처의 상당수 세력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에‘강한 노조’를 가장 염려하는 재벌까지도 인정했는데, 정부 안의 반대 세력이 방해하고 있어요. 사회통합적 노력을 마땅치 않게 보는 세력이 우리 정부 안에 다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행위입니다. 정부 안에서만큼은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부의 견고한 방해 세력을 어떻게 돌파하실 겁니까?

그러니까 정부 안에서도 논쟁하고 싸우고 그래야지요. 독재 국가가 아니잖아요. 저로서는 정부가 노사정위의 합의만큼은 지켜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사회적 합의 아닙니까. 정부 안에도 노사정위가 구조 조정을 하는 데 발목 잡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노사정위의 역할에 대해 김대통령이 회의적이지는 않던가요?

김대통령은 한국 사회에 노사정위 제도를 뿌리 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계십니다. 다만 민주노총을 야속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있죠. 그래도 김대통령은 여러 정치 지도자 중에서 노동자와 서민을 가장 많이 대변한 분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하는 섭섭한 생각을 하고 있습디다.

노사정위 책임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불만은 없습니까?

기본적인 것은 불만이 없어요. 저는 노사정위가 무한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위기를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는 힘이 필요합니다. 김대통령이 힘을 더 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김대통령은 저한테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문제를 풀도록 왜 그때그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만, 말이 그렇지 어떻게 사안마다 대통령에게 의견을 개진합니까? 결국 정부와 노사정위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못박아야지요.

노사정위 좌초에 대한 책임론도 없지 않은데, 앞으로의 정치 운명에 노사정위 경험이 어떻게 작용하리라고 보십니까?

도움이 됐어요. 노사 양쪽과 이렇게 깊이 대화를 나눈 경험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아주 보람 있는 시기였습니다. 노사 양쪽의 생각과 입장을 경청하고 방향을 잡은 것,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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