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 “비리 정치인, 구속이 능사 아니다”
  • 徐明淑 취재1부 부장 직무대행 ()
  • 승인 1998.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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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부정 부패를 척결하지 않은 채 경제를 개혁하고 회복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사안의 경중과 질에 따라 강도를 달리해야지요. 정치인은 일종의 명예직인 만큼 흠결이 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처벌
김중권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대중 정권에서 독특한 입지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80년 정계 입문 이후 사실상 ‘김대통령의 반대편’에 서서 정치 활동을 해온 전형적인 TK. 김대통령과의 정치 인연이라면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정무수석과 야당 총재로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국민회의에 입당해 당선자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중용된 지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그동안 김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현정권의 최고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 그래서일까. 보궐 선거, 정치인 사정, 정계 개편, 총풍 관련 재판 등 정가에 현안이 터질 때마다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다. 김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한 지난 1년의 소회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난 날은, 이회창 총재의 동생 회성씨에 대한 구속 영장이 떨어진 12월12일, 토요일 오후였다.

오늘 오전에 이총재의 동생 이회성씨가 구속되었는데요. 이총재를 더 이상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아닙니까?

이총재가 한나라당 총재인 이상 정국의 파트너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번 영수 회담도 이뤄진 것 아닙니까? 파트너십은 여권이 인정하고 안하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야당은 이번 일을 야당 파괴 음모로 규정하고 강경 대처할 태세인데요.

야당 파괴라고요? 저는 야당이 회성씨를 감싸고 도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세풍’은 국가 권력을 동원해 정치 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한 사건입니다. 법으로 엄중히 다스릴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야당 파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고, 잘못된 태도입니다.

정계 개편을 위한 2차 사정이 있으리라는 관측이 무성합니다.

범죄가 있으면 제제를 하는 건 당연합니다. 1차니, 2차니 하는 구분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그 말은 정치인 추가 사정이 있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부정 부패를 저지른 사람을 꾸준히 응징한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뜻입니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법 앞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국민의 대표인 정치인은 청렴성과 도덕성에서 더 높은 가치 기준을 요구받습니다. 정치인 부정 부패를 척결하지 않은 채 경제를 개혁하고 회복시킨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그러나 구속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사안의 경중과 질에 따라 강도를 달리해야지요. 정치인은 일종의 명예직인 만큼 흠결이 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처벌을 받는 셈입니다.

그동안 검찰의 정치인 수사와 관련한 진행 상황을 여러 차례 언급해 ‘비서실장이 검찰총장이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검찰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정치권과 상층부의 눈치를 보는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사정과 관련해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한 일이 결코 없습니다. 다만 법무비서관을 직속 비서관으로 두고 있는 제가 검찰 수사 결과를 사후에 보고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외부에 말하는 것은 검찰의 수사와 판단이 다 끝난 후의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어디에선가 들은 전문(傳聞)이다’라고 단서를 붙였는데도, 기자들이 앞뒤를 다 빼고 쓰더군요. 그래서 제가 마치 수사의 주체인 것처럼 비친 것입니다.
역대 비서실장들과는 달리, 외부 특강 등에서 자기 소신을 자주 피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소리 없이 보좌해야 하는 비서실장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통령께서 말리시지는 않던가요?

대통령을 보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 국정을 살피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비서실장의 소임을 다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어느 자리 어떤 장소에서든,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통치 이념을 널리 알려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도 평소 대통령의 철학과 생각을 가장 잘 아는 비서실장이 이런 일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김대중 정부의 지향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서민의 등을 따습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 아닌가요?

우선은 경제부터 회생시켜야 합니다. 기업 구조 조정 과정에서 실업이 대량 발생하고 근로자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가고 있지만,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이 보장되면 투명한 경영에서 얻어지는 과실은 반드시 근로자에게 1차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김대통령께서는 그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경제 회생에 힘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특강에서 내각제와 관련해 ‘약속은 반드시 지키지만 경제 상황에 비추어 아직 거론할 때가 아니다’라는 요지로 말씀하셨는데, 결국 임기 말인 2002년에 개헌하자는 메시지 아닙니까?

그런 뜻에서 한 말이 아닙니다. 김대통령은 이미 내년 안에 우리가 IMF를 졸업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최근 인터뷰에서 복안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각제와 관련해서는 복잡하게 논의할 것도 별로 없고, (내각제를 추진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다만 지금은 경제 회생에 전력 투구해야 할 때이고, 국민도 이런 시기에 권력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영호남 화합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활용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씨의 영향력을 과대 평가하는 것 아닌가요?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그쪽이나 우리쪽 사람들이나 순전히 동서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사찰측 요청에 응한 것뿐이에요. 이영일 의원도 목포 법회에 다녀온 뒤 제게 전화했더군요. 그 지역 사찰에서 거듭거듭 요청해 내려가는 길에 전씨 일행과 동승했을 뿐이라고요. 우리는 연희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동서 화합은 궁극적으로는 인사 형평성과 예산 균분성을 통해 이루어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김대통령이 김실장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 김실장께서 대선 당시 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20억 플러스 알파는 없다’고 확인해 준 공로를 높이 산 것 아닐까요?

그 때문이라면 (대통령이) 고마워하기보다 오히려 섭섭하셨을 겁니다(웃음). 당시 여권의 플러스 알파 공세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저는 모처에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그 가능성을 부인하는 진술을 했지만, 그 사실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습니다. 제가 그 문제를 이야기한 것은 김후보가 정치 자금 공세의 위기에서 상당히 벗어난 뒤의 일입니다. 김대통령께서 지난해 12월20일 일산 자택에서 당선자 비서실장으로 저를 임명한다고 통보하면서 세 가지 배경을 말씀하시더군요. 지난번 대선에서도 동서 갈등이 드러난 점이 가장 가슴 아픈데 당신이 TK 출신이니 새 정권이 동서 화합을 이루는 데 곁에서 도와 달라, 또 최근에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당신만큼 생각이 정리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또 우리 당에 당신만큼 청와대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

정가 주변에서는 내년 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떠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요청하면 당으로 가실 의향이 있습니까?

우리 당에는 저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비서실장 직을 그만두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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