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차의 계절, 차의 진수를 맛보려면…
  • 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몸에 좋은 비타민·칼슘 골고루 함유 곡우 전에 딴 우전차가 일품
차(茶)에 관한 퀴즈 몇 가지. 세계에서 1인당 차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 일본? 아니다. 유럽의 아일랜드다. 아일랜드 사람은 한 해에 차를 3000g 이상 마신다. 두 번째 문제. 그렇다면 한국인이 1인당 연간 마시는 차의 양은? 힌트. 이웃한 일본의 1인당 소비량이 1020g이니까…. 500∼600g 정도? 틀렸다. 답은 26g이다. 세 번째 문제. 서양인이 즐겨 마시는 홍차와 동양인이 즐겨 마시는 녹차 재료는 같을까, 다를까? 답은 ‘같다’이다. 홍차는 찻잎을 완전히 발효시킨 것이고, 녹차는 어린 찻잎을 따서 덖은 것이다.

5월은 차의 달이다. 각 지역에 있는 다원에서 햇차가 쏟아져 나오고, 25일 서울 경복궁에서는 제20회 ‘차의 날’ 기념 행사가 열린다. 이맘때 우리 차에 대한 상식 몇 가지를 알아두고, 차의 진미를 한두 번쯤 맛본다면 들뜬 기분으로 보낸 5월을 차분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녹차 카페인, 커피 같은 부작용 없어

차는 보통 1년에 네 번 수확하는데(87쪽 상자 기사 참조), 특히 봄에 딴 차를 최고로 친다. 봄에 만든 차는 곡우(4월20일께) 이전에 만드는 우전차(雨前茶;햇물차), 입하(5월5일께) 때 만드는 입하차(入夏茶)로 나뉜다. 그리고 곡우와 입하 사이에 어린 잎으로 만든 차를 특별히 세작(細雀)이라 부른다.

차는 수확 시기에 따라 맛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데, 옛 사람들은 싱그러운 젖맛과 단맛이 나고, 뒷맛이 오래 남는 차를 최고로 쳤다. 요즘에는 산뜻한 풋냄새와 고소한 향이 일품인 우전차를 특히 귀하게 여긴다.

차에는 다섯 가지 맛이 들어 있다. 짠맛·신맛·떫은맛·단맛·쓴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이다.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 있기도 한데, 찐 차보다 덖은 차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하지만 녹차 연구가 정영선씨에 따르면, 녹차의 카페인은 커피와 달리 부작용이 없다. 찻잎 중의 카페인이 폴리페놀과 쉽게 결합해 크림을 형성하고, 이것이 낮은 온도에서 불용성으로 유지되어 잘 녹지 않아 체내에서 동화하는 속도가 늦기 때문이다.

차에는 비타민 A·B1·B2·E·C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또 물에 잘 녹는 무기질(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훌륭한 알카리성 음료이다. 그 외에도 칼슘·마그네슘·나트륨·불소와 함께 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철·망간이 들어 있다.

이같이 다양한 성분은 우리 몸에 이로운 여러 변화를 일으킨다. 우선 대뇌 중추 신경을 자극해 정신을 맑게 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 또 기억력·판단력·지구력을 높이고 졸음을 없앤다. 혈관을 확장시켜 운동 능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잘 믿기지 않겠지만 녹차는 여러 가지 약효를 보이기도 한다. 허 준은 <동의보감>에서 작설차가 ‘정신을 진정시키고, 소화를 돕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소갈증을 멈추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자게 한다’고 소개했다.

저혈압 환자·위장 약한 사람은 되도록 피해야

최근에 와서 이 기록이 결코 과장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영남대 의대 해부학교실 박정현 연구원(공중의)은 녹차가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항균·혈압 강하·혈당 강하 등의 약리 작용을 한다고 전제한 뒤 “녹차는 암 예방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세포(암세포)의 자연사를 유도해 종양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암 치료 효과까지 있다는 것이다. 안희열 교수(충북대 의대·약리학)는 “녹차의 탄닌 성분이 동맥경화를 예방한다”라고 밝혔다.

차는 충치 예방과 구취 제거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용성 불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덕이다. 특히 거친 차에 불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식후나 음주 뒤에 중차(中茶)로 입안을 가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한상섭 한국화학연구소 안전성연구센터장은 “녹차가 학습 능력과 기억력 증진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라고 설명한다. 그 외에도 차는 이질균·장티푸스균·포도상구균의 성장을 억제한다. 탄닌(폴리페놀)이 세균체의 단백질과 결합해 쉽게 응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중독과 감기를 예방하며, 식후의 차 한잔은 입안의 세균 번식을 억제한다. 또 배뇨를 활발하게 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과음했을 때 마시면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차에도 ‘위험’은 있다. 즉 너무 마시면 몸에 나쁘다. 특히 저혈압 환자, 손발이 찬 사람, 찬 음식을 먹으면 설사하는 사람에게 안 좋다. 공복 때 마시면 위가 약한 사람에게 해롭다.2, 3년 마셔야 맛·향·색 제대로 만끽

다인(茶人)들에 따르면, 차를 제대로 마시려면 무엇보다 물과 차를 잘 써야 한다. 차가 아무리 비싸고 좋아도 수돗물과 만나서는 제 맛을 내기 어렵다. 생수를 이용하기가 어려우면, 적어도 정수한 물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수돗물을 이용한다면 10분 넘게 끓여야 한다. 염소를 포함한 발암 물질과 냄새를 날려보내기 위함이다. 끓일 때 뚜껑을 조금 열어놓으면 효과가 크다.

그 다음은 끓이기. 조선 초 문신 정희량은 다시(茶詩)에서 찻물이 끓는 단계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끓는 소리 쉬쉬 하니 골짜기에서 울리는 솔바람 소리 같고(애벌 끓음 약 70℃)/세차게 끓어오르니 급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구나(두벌 끓음 80∼90℃)/우뢰와 번개가 끊임없이 일어나듯 하고(한창 끓음 100℃)/수레를 급하게 몰아 험하고 꼬불꼬불한 고갯마루를 넘듯 하더니(작은 불길로 뜸들임)/다시 구름이 걷히고 바람이 잠들고 나서야 파도가 일지 않고 고요하도다(불을 끔)…’

이외에도 옛 묵객이나 선비 들은 찻물이 끓는 소리를 돌솥에서 지렁이가 기어가는 소리, 봄 강물이 흐르는 소리, 대숲의 바람 소리 등에 비유했다. 또 끓어오르는 기포를 게 눈·물고기 눈·물고기 비늘·놀란 물결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같은 정취를 맛보려면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한다. 차 전문가들은 비오거나 흐린 날은 가급적 차를 삼가라고 권한다. 차의 빛깔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시끄럽거나 잡냄새 많은 곳에서도 찻물을 끓이는 재미와 차 향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들은 다도의 정신으로 화경청적(和敬淸寂)을 든다. 즉 화평하고, 예절 있고, 맑고, 고요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일본인들처럼 번거롭고 까다로운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다만 차를 마시기 전에 코로 킁킁 냄새를 맡거나, 입맛을 쩝쩝 다시거나, 꿀꺽꿀꺽 소리 내어 마시거나, 후후 불면서 마시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차를 오래 마신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차는 함께 마시는 사람의 수가 적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18세기 다승(茶僧)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에서 ‘차를 마실 때 객이 많으면 수선스럽고, 그윽한 정취가 사라진다.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 마시면 한적하다. 서넛이 마시면 유쾌하고, 대여섯이 마시면 덤덤하고, 일고여덟이 마시면 나눠 먹이와 같다’고 주장했다.

차는 처음 마시면 그저 쓰거나 밍밍하다. 참맛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한다. 처음 2, 3년은 맛을 제대로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시면 차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법정 스님은 차의 오묘한 빛과 향기와 맛이 ‘밤의 별빛과 맑은 바람과 이슬 그리고 안개 구름 햇볕 눈 비… 이런 자연의 맑디맑은 정기가 한데 엉겨 나는 것’이라면서, 차를 진지하게 계속 마시다 보면 자연히 차의 색·향·미(味)의 참맛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추사 김정희가 차를 마시며 남긴 다시(茶詩) 한 수가 전한다. ‘조용히 앉아서/반쯤 차를 달이니 향기가 비로소 들리고/일어서 움직이면/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술과 정반대 효과 나타내”

번잡한 세상사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차 한잔에서 이처럼 그윽한 정취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맑고 향기로운 차의 기운과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25년간 녹차를 마셨다는 사진작가 육명심씨(67)는 “차는 술과 정반대 효과를 나타낸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끓어오르지만, 차는 봄비 온 뒤의 고요와 비슷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기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촉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마치 인정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같이 느낄 때가 많다”라며 녹차 예찬론을 펼쳤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녹차로 밥과 죽을 만들어 먹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찻잎이나 티백으로 차술과 차튀김·차라면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또 최근에 등장한 분말 녹차로 국수·떡·수제비·빵 등을 만드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갈수록 녹차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약 요즘같이 ‘뿌연 세상’에 녹차 같은 기호품이 없다면 인간의 안뜰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삭막하고 어두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녹차는 그 색깔만큼 우리들을 모처럼 한가하고 고요한 명상에로 이끌고, 심신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특급 기호품’임에 틀림없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喫茶居!(차나 한잔 하시지요).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