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이광모 감독 “이산 가족 실상 담은 영화 만들겠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12.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영화 제작 규모가 외국에 비해 작은 편은 아닙니다. 다만 각 공정에서 완성도를 향한 집념이 부족하고 꼭 거쳐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건너뛰는 것이 문제죠. 감독들 또한 자기 작품에 기대치가 낮은 것 같아
이광모 감독은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이다. 그는 데뷔작 〈아름다운 시절〉로 지난 11월8일 일본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금상과 기린상을 거머쥐며 국제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첫 수상 소식을 신호탄으로 미국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19일), 그리스 데살로니케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예술공헌상(22일), 프랑스 벨포르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29일)를 잇달아 받았다. 〈아름다운 시절〉은 21일 만에 4개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5개 받아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영화가 되었다. 이감독을 12월 4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스크린 쿼터 폐지 반대 집회에 참석하기 직전에 만났다.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려면 이감독도 지적했듯이 인맥이나 로비·홍보도 필요합니다. 그런 요소를 갖추지 못한 〈아름다운 시절〉이 수상 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많은 영화제에 로비나 인맥이라는 게 존재합니다. 그런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데, 그런 영화제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제들이 있죠. 시장 영향력이 큰 영화제들은 로비가 굉장히 치열합니다. 도쿄 영화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도쿄 영화제에서 제 영화가 금상을 탄 것에 대해 의아해 했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개 자기 색깔을 강조하는 영화제들입니다. 자기 프라이드가 매우 강한 그리스의 데살로니케 영화제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와이나 벨포르에서 열린 영화제는 안 가 봐서 성격을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이 안 갔는데도 그렇게 큰 상을 준 것은 의외였습니다.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으니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에 변화가 좀 있던가요?

수상하기 전에는 제 영화에 대해 혹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본이 안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관객들은 우리 영화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왜 한국 사람이 한국 영화를 바로 평가하지 못하는지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에서 인물·이야기·이미지, 이 세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시선의 틀’을 구축하려 했기 때문인지, 인물이 잘 와닿지 않아 불만스러워하는 관객들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 이런 것들이 꼭 영화에서 두드러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감독이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다양한 인물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많이 집어넣었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보여준다면 관객들은 그 인물의 상황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미군의 아이를 밴) 영숙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 인물의 심리나 그가 느끼는 아픔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신(scene)이 열 개는 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려면 네 신 가지고는 불가능하죠.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군상의 아픔들을 벽화처럼 그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이 맞지 않았던 겁니다. 감정을 배제하려 한 게 아니라, 감정에 집착하는 순간 영화의 의도가 깨져 버리는 겁니다. 감독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자기가 중시했던 부분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면서 본다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데, 자꾸 자기 틀로만 영화를 파악하려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시절〉이 상은 많이 받았지만 부문별 수상은 없었습니다. 거대한 시선의 틀을 구축하느라 이런 부문들이 희생된 면은 없을까요? 가령 롱 쇼트 때문에 연기가, 고정된 카메라 때문에 촬영이 그렇지 않았나요?

연기가 두드러진다, 촬영이 두드러진다고 한다면 그건 그 영화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저는 연출이든 연기든 촬영이든 편집이든 그 자체가 (개별적으로) 느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배우가 연기를 잘했다고 그 배우를 의식하는 순간, 예를 들어 창희 역을 맡은 김정우의 연기가 두드러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영화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됩니다. 특히 그 배우가 알려진 배우이거나 스타 배우일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시나리오를 10년 동안 수정해 오는 과정에서 문학적 감수성과 영화적 감수성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사실 시나리오 초고에서는 인물이나 스토리에 집중했습니다. 영화의 특성이나 장점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학적인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스토리를 어떻게 해야 감동적으로, 완벽하게 전할까를 고민했죠. 그런 측면에서는 초고도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에 주어진 두 시간은 많은 시간이 아닙니다. 물리적으로는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시간이죠. 인물이나 스토리에 신경 쓰다 보면 영화가 전달할 수 있는 다른 측면들을 간과하게 되어, 매체의 장점을 살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그래서 초반에 쓴 시나리오의 인물이나 스토리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지금 대학가에서는 문화적 관심이 영화에 편중되어 학생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편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 70년대 80년대 대학생들은 문학 작품, 즉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했고 거기에서 정신적인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90년대 젊은이들이 과거처럼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자양분을 영화에서 얻어야 하는데 영화가 그 역할을 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협 소설이나 SF 소설이 판을 치는 형국이죠. 저는 거기에 심각한 문화적 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하면 인문학 쪽에서 이야기하는 위기감은 편협한 것입니다.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문화의 중심이 문학에서 영화로 넘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정작 고민해야 할 문제는 쓰레기 같은 영화들만 보여지고 있는 현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문학이든 영화든 어떤 역할을 해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을 안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무정부 상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후진적인 한국의 영화 제작 시스템이 늘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같은 상업 영화 제작 시스템만 놓고 비교해도 한국과 영화 선진국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나라마다 고유한 영화 제작 시스템과 규모가 있습니다. 우리 규모가 외국에 비해 작은 편은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은 우리도 다 거치는 편입니다. 다만 각 공정에서 완성도를 향한 집념이 부족하고, 작업 공정에서 꼭 거쳐야 할 것들을 건너뛰는 것들이 있어 문제죠. 촬영·편집·녹음 등 공정마다 꼭 거쳐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건너뛰어서 속성으로 하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아요. 감독들 또한 자기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에 부닥치다 보면 ‘이 정도면…’ 하는 식으로 자기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 낮추는 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구상하고 계신 새 작품이 있습니까?

이산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를 찍을 계획입니다. 이벤트나 상황을 만들어 그 현장에 실제 이산 가족들을 투입하는,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한 드라마가 될 것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필요하다면 북한까지도 들어갈 계획입니다. 가능한 한 올해 안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하고 내년 중반부터 촬영에 들어가 2년 뒤에는 완성작을 내고 싶습니다. 저 자신도 이산 가족의 한 사람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