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고래, 어떻게 살리나
  •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박사) ()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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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 환경 교란돼 멸종 위기…보존·관리 위한 연구 인프라 구축 시급
그간 한국에서는 상업적 고래 포획이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적지 않은 밍크고래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었다. 그 출처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밀수 혹은 불법 포획으로 추측했다.

1998년을 전후해 시장에서 유통된 고래 대부분이 그물에 걸려 죽은 ‘혼획’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포경위원회(IWC)는 혼획으로 인해 한국 연안의 밍크고래가 수년 안에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나라 연안 어업까지 국제적 지탄을 받을 처지였다. 반면 어민들은 고래가 너무 불어나 어장이 망가지고,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고 원성이 자자했다.

1999년 처음으로 조사선을 동원해 고래 실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 나라 바다에 30여 종의 고래류가 분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20여 종의 고래류에 우리나라식 이름을 부여했고, 2000년에는 국내 최초의 고래 도감 <한반도 연안 고래류>가 발간되었다. 또한 고래 포스터와 혼획·좌초 고래 처리 및 구조 요령에 관한 행정 간행물들도 잇달아 만들어졌다.

정부는 고래 혼획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1996∼2003년 혼획 고래 관리 체제를 통해 처리된 고래 숫자는 무려 18종에 2천1백 마리나 되었다. 그 가운데 밍크고래가 가장 많아 6백30여 마리나 되었다.

국제포경위원회에서는 지금도 혼획이 수년 내 밍크고래의 멸종을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과, 밍크고래가 포획 가능한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는 의견이 맞부딪치고 있다. 이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할 당사자는 바로 우리 나라이다. 해양수산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이를 위해 한반도 주변 동해·서해·남해·동중국해·오호츠크 해·일본 태평양 수역의 고래 분포와 시기별 이동 경로, 서식지의 위치와 생태 환경을 조사하고 있다.

10년 전 <시사저널>이 우리 나라 고래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한 이래, 고래 연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필자도 그동안 밍크고래와 여러 고래류의 자료를 꾸준히 수집했으며, 대학과 연계해 고래 음향 연구와 상괭이(작은 돌고래)의 생태학적 연구 등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연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귀신고래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귀신처럼 신출귀몰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동해에서 참고래와 함께 가장 흔한 고래였다. 하지만 19세기 말 서양의 포경선이 남획에 나서는 바람에 멸종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급기야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조처를 취했지만, 1975년 국제 학회에 한국계 귀신고래가 멸종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이후 보기 힘들게 되었다.

한반도 연안에 고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5천 년 전 선인들이 남긴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는 혹등고래·북방긴수염고래·귀신고래·향고래·범고래· 들쇠고래 같은 고래 58 마리의 그림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여러 사람이 배를 타고 창으로 대형 고래를 잡는 모습은 에스키모들이 고래를 잡는 모습과 같다. 세계 어느 곳에도 이처럼 귀한 고래 그림은 없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도 한반도 연안에는 고래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우리 나라 근처에는 구미 열강의 포경선이 들끓었다. 한 일지에 따르면, 1849년 한 해에만 미국의 320t급 포경선 1백20여 척이 들어왔다. 또 프랑스·독일·러시아·일본 포경선도 무수히 드나들었다. 당시 주로 잡힌 고래는 북방긴수염고래·참고래·혹등고래·귀신고래·대왕고래 등이었다.

남획은 사라졌지만 현재 고래는 여러 가지 위험에 직면했다. 해양 개발과 오염으로 인해 서식지가 교란되고, 혼획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박과의 충돌이나, 수중 음파 교란 등도 고래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1958년부터 1985년까지 동해·서해·남해에서 참고래 9백21마리, 밍크고래 1만4천5백87마리, 귀신고래 32마리 등 대형 고래를 모두 1만5천5백90마리 포획했다. 많은 고래가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포획되었지만, 그에 상응한 조사와 연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래서는 보존과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다.

최근 참고래와 혹등고래가 우리 나라 연안에서 관찰되고, 귀신고래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어 고래 연구자들의 눈과 손과 발이 부산해졌다. 1백20년 전인 1884년 갑신년에는 수산업과 포경업 장려 등 국정 개혁 운동이 있었다. 새로운 갑신년인 올해에는 고래박물관이 생기는 것과 더불어, 정부가 고래 연구 인프라 구축의 원년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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