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바이러스와 황사가 만나면?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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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독감 감염 경로로 의심…가능성 있지만 ‘실제 상황’ 안 올 듯
조 류 독감 바이러스가 사람의 ‘피 맛’을 단단히 본 모양이다. 2월6일 현재, 베트남 사람 15명의 몸에 들어가 그 가운데 11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태국에서도 5명을 발병시켜 모두 사망에 이르게 했다. 아직 조류 독감을 일으키는 H5N1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H5 N1 바이러스는 들불처럼 빠르게 다른 나라로 번지고 있다(2월9일 현재 가금류에서 H5N1 바이러스가 검출된 나라는 한국·미국·베트남·일본·캄보디아·중국 등 10개 국이다).

도대체 바이러스는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일까. 일부 전문가들은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철새를 매개로 해서 국가와 국가 사이를 넘나든다고 주장한다. 서상희 교수(충남대·수의학과)는 최근 야생 청둥오리 몸에서 H5N1 바이러스를 검출했다고 보고했다. H5N1 바이러스가 국가 간을 이동하는 데 이용하는 매개체가 철새뿐일까? 아직은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또 하나 의심 가는 매개체가 나타났다. 봄이면 어김없이 출몰하는 황사다. 황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은 중국에 있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황사에 몸을 싣고 한반도로 건너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럴듯한 추측이다. 공기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조심스럽다. 최중국 교수(충북대 종양연구소)는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낮다. 바이러스는 그만큼 강하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물기가 없으면 효소와 핵산이 깨진다. 그런데 황사에는 물기가 거의 없다. 따라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황사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낮은 구름과 황사가 만나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구름이 온통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김의석 교수(인제대 서울백병원·감염내과)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는 비말(물방울)이 있어야 감염된다. 물기가 없으면 말라죽는다. 따라서 조류 독감 바이러스는 먼 거리를 날아가 감염될 수 없다.” 모든 바이러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 탄저균이나 결핵균은 공기를 통해 먼 거리를 날아가 감염되기도 한다.

황사를 의심하는 것처럼, 한때 모기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적이 있었다. 모기가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뒤, 건강한 사람의 피를 빨 경우 에이즈를 감염시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결국 몇몇 과학자가 연구에 나섰다. 그리고 매우 모범적인 답안을 작성했다. 황사와 마찬가지로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실제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실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바이러스들의 생태가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를 크게 RNA 바이러스와 DNA 바이러스로 나눈다. RNA 바이러스는 화끈하고 박력이 있어서,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한다. 볼거리·홍역 바이러스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이 비교적 쉽게 치료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DNA 바이러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은 RNA 바이러스보다 떨어지지만, 일단 질병을 일으키면 ‘장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치료하기가 어렵다. 에이즈·사스·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바이러스의 또 다른 특징은 변이를 잘 한다는 점이다. H5N1 바이러스도 조류 독감의 또 다른 변종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예방·치료 방법이 없다. 특히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와 중복 감염이 일어날 경우 꼼짝없이 사망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그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H5N1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그 약이 1년 안에 나올지, 10년 안에 나올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H5N1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H5N1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매우 높다. 1918년 3천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지난해 8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의 치사율이 각각 4%·11%인 데 비해 H5N1 바이러스는 1997년 홍콩에서 33%를 기록했다(감염자 18명 중 6명 사망). 백신이 늦게 개발될수록 사망률은 더 높아진다.

최중국 교수는 한국도 백신 개발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백신은 이제 새로운 무기다. 특히 한국의 턱 밑에는 각종 바이러스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홍콩이 있다. 언제 어떤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모르는 상황인 셈이다. 그런데도 보건 당국은 의약 선진국만 바라보고 있다.”

최교수에 따르면, 백신 개발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기 시설 자금이 좀 들어가지만 엄청난 수준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백신 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그 날’이 언제 올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H5N1 바이러스 백신 개발과 관련해서 보건 당국이 그 어떤 프로그램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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