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향기롭게 하는 ‘냄새’의 신비
  • 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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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성생활에 큰 영향…아로마 요법, 각종 질병에 효험
몸매가 좋은 남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여름은 여러 모로 귀찮은 계절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무엇보다 고온과 습기로 인한 악취가 사람을 괴롭힌다. 땀내·암내·발 고린내·쓰레기 썩는 냄새….

이같은 악취들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5백만 개에 달하는 후각 세포가 마비되거나 40만 가지나 되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한, 좋지 않은 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악취를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방법은 있는 것 같다. 바로 냄새의 ‘정체’를 알아내 온갖 냄새와 친해지는 것이다.

냄새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냄새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상당히 극적인 육체적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피트 브론은 <냄새, 그 은밀한 유혹>(까치)이라는 책을 통해 냄새가 ‘인간의 성생활·동기 부여·기억 과정(학습·건강·안정감)에 영향을 미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가스가 새는 경우 등)이 닥치면 경종을 울리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가장 먼저 맡는 냄새가 어머니의 양수 냄새인데, 그 냄새가 아기의 심리학적·생리학적 발달에 꼭 필요한 인상들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냄새의 중요성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냄새를 맡는 후각은 천하고 지저분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냄새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19세기 들어서였다. 땀·숨·소변·대변·가래 따위의 냄새가 몸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확인한 의학자들이 냄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냄새는 ‘타임머신’…잊힌 기억 되살려

하지만 냄새가 음파같이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의학자들은 후각에 관한 지식을 제대로 쌓을 수가 없었다. 또 냄새가 사람이 느끼기 전에 먼저 주변 환경과 반응해 정체를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 의학은 이같은 난제들을 극복하고 냄새의 비밀을 하나둘 밝혀냈다.

후각이 맛을 인식하고 식별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다. 코가 막힌 사람은 단지 단맛·신맛·짠맛·쓴맛밖에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코가 막힌 사람은 커피를 마셔도 깊은 맛을 잘 느낄 수 없다. 각종 청량 음료나 포도주·마늘같이 향신료를 포함한 먹거리는 아예 정상치 맛의 10분의 1밖에 느끼지 못한다.

사람마다 후각 능력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밝혀졌다. 심지어 레몬이나 오렌지 냄새를 알아내는 실험에서는 4천 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여성은 남성보다 후각 능력이 뛰어나다. 때문에 순전히 땀이나 숨 냄새만으로도 상대의 성별을 감별해 낸다. 한 실험에 따르면, 40가지 냄새 가운데 여자들은 75%를 알아맞힌 반면, 남자들은 55%만 알아맞혔다.

후각 연구가들에 따르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람의 후각은 퇴화한다. 때문에 노인이 되면 냄새를 인식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감퇴한다. 대개 50∼60대까지는 후각이 괜찮은 편이다. 그 뒤부터 서서히 감수성을 잃어 가는데,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서 본인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80세 이상 노인의 75%, 65∼80세 노인의 50%가 냄새를 전혀 못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학자들은 노인들이 삶을 무료하게 느끼는 한 요인으로 후각 퇴화를 꼽기도 한다.

냄새는 우리를 과거로 이끄는 ‘타임머신’이 되기도 한다. 어쩌다 분필 냄새를 맡으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외양간 냄새나 바다 내음을 맡으면 고향 생각이나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피트 브론은 이 기전을 ‘상태 의존성 복구’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특정한 정신적 상태나 장소에서 배운 것들을 나중에 같은 상황에서 더 잘 기억해 낸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시며 기억한 영어 단어는 술을 마시면 훨씬 더 잘 떠오른다. 이것은 냄새가 혈류에 들어가 호르몬 및 효소와 반응해 심리적으로 옛 추억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혹시 출근길이나 퇴근길에서 상쾌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확인한 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상쾌한 냄새는 순수한 냄새가 아니다. 복합적인 냄새이다. 커피·맥주·김치·불고기 냄새도 마찬가지. 수백 가지 물질의 냄새이며, 사무실의 고약한 냄새는 천 가지가 넘는 냄새로 이루어진다.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비슷하다. 대부분 식물·양념·과일 냄새는 좋아하지만, 썩은 식품·배설물 냄새 같은 것은 싫어한다. 이것은 인간이 질병을 옮기는 것들의 냄새를 싫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냄새에 대한 태도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후각 연구자들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냄새란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갓난아기들은 똥 냄새나 썩은 냄새에 대해 그다지 싫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사람의 배설물이나 썩은 식품이 병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그런 것들에 서서히 혐오감을 갖기 시작한다. 박하향 5분 정도 맡으면 멀미 ‘뚝’

병원의 소독약 냄새도 그리 좋은 냄새는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원에 가면 불쾌한 기분을 갖는다. 하지만 그같은 냄새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없앨 수도 있다. 많은 병원이 공기를 정화해 병실의 특징적인 냄새를 없애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 방법은 환자들의 비관적인 생각이나 우울증을 덜어내, 그들의 회복 속도를 어느 정도 앞당길 수도 있다.

향기를 이용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영국의 히스로 공항 청사에서는 이용객들에게 안락감을 주기 위해 솔잎 향을 뿌리고 있다. 또 어떤 컴퓨터 업체는 자료를 입력하거나 워드 프로세싱 업무를 하는 사원들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사무실에 레몬 향을 뿌리기도 한다. 일본의 몇몇 회사는 아침에는 레몬 향을, 오후에는 연한 꽃 냄새를, 오후에는 나무 향을 사용해 사원들의 원기를 북돋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로마테라피(향기 치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향기 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좋은 냄새는 불안을 덜어주고, 일을 잘하게 하고, 육체 질환을 경감시키고, 정신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 공포증·우울증·수면 장애·중독증까지 치료할 수 있다. 특히 바다 냄새처럼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는 것도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 조성준 박사에 따르면, 향기 치료는 주로 식물의 원액을 이용한다. 치료법은 크게 흡입법·피부 도포법·목욕법 등이 있다. 흡입법은 비염을 치료하거나, 신체 기능의 균형을 잡아줄 때 사용한다. 피부 도포법은 피부 질환·스트레스·호흡기 질환 등을 해소할 때 주로 이용된다. 목욕법은 부인과 질환, 생리 전 긴장 증후군, 알레르기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

일반인이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건식 흡입법이 있다. 손수건이나 티슈에 향유를 뿌린 뒤 5분 정도 흡입하는 방법이다. 멀미가 날 경우 박하향을 수건이나 티슈에 한 방울 묻혀서 코에 5분 정도 대면 멀미기가 사라진다. 갑자기 두통이 찾아올 경우, 라벤더와 박하향을 혼합한 액을 한 방울 티슈에 묻혀 흡입하면 효과가 있다.

향기 치료, 암·당뇨병 등에는 효과 없어

조성준 박사에 따르면, 사용되는 향유는 증상 별로 다르다. 보통 크기 침실이라면 향유 네 방울 정도가 적당하다. 불면증에는 라벤더나 마조람 향이 좋고, 호르몬 장애나 생리 전 긴장 증후군에는 클라리 세이지 향이 좋다. 침실의 최음 효과를 높이려면 장미·자스민·네롤리 향을, 천식이나 만성 알레르기·비염 등에는 카모마일 향을 흡입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수험생의 정신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로즈마리 향이 도움이 된다. 집안에 오렌지 향을 나게 하면 분위기가 훨씬 화기애애해진다.

그러나 신경정신과 의사 오홍근 박사는 향기 치료가 70% 정도 효험을 보인다고 해서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암과 당뇨병 같은 난치병에는 효과가 거의 없다. 향기 치료를 보조 요법 정도로 생각해야 실망하지 않는다.”

현재 향기 치료에 필요한 기기나 향료는 서울 압구정동·청담동 등의 전문점 10여 곳과 몇몇 백화점에서 팔고 있다. 임상에 쓰이는 향료는 대략 30여 가지인데, 라벤다·박하 향은 5cc에 만원 정도 하며, 자스민 향은 5만원쯤 한다.

수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냄새는 분명히 인간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안락하게 감싸주고, 따뜻한 감정을 갖게 해 가슴 속을 채워주는 것이다. 여름에 맡는 냄새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여름 냄새에는 악취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조금 신경을 써야 한다. 즉 좋은 냄새를 맡으며 유쾌하게 여름을 나려면 몸을 청결히 하거나, 집안에 화초를 키우거나, 향기 치료를 적극 이용하거나, 아니면 여행을 떠나 자연과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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