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 가는 길이 북적인다.
  • 정유미 (goodday 기자) ()
  • 승인 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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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짱’ 박태종과 ‘얼짱’ 이애리·문세영 기수, 구름 관중 몰고와
스타 기수들이 경마의 대중화 시대를 열고 있다. ‘과천벌 리딩자키’ 박태종 기수(39)가 지난 1월31일, 한국 경마 82년 역사상 최초로 1천승을 달성하면서 경마를 모르던 사람들에게까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기수의 대기록은 ‘전문 베팅꾼’이 아닌 순수 경마 팬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건져올린 쾌거여서, 한국 경마사에 한 획을 긋는 동시에 경마가 ‘대중 스포츠’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충북 진천 출신으로 1987년 제13기 기수 후보생으로 경마에 입문한 박태종 기수는 해마다 50승 이상을 올리며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1996년 세운 한 해 최다승(1백2승)과 최다 출전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대기록을 세운 원동력은 철저한 자기 관리였다. 박태종 기수는 데뷔 후 밤 9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부터 말을 타는 생활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박태종 기수 이후 1천승 돌파는 2018년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 기수의 경우 최소 45세가 넘어야 1천승이 가능한데, 이때가 되면 조교사로 전직할 가능성이 높아 경기에 출전하기가 어렵다. 현재 승수로 볼 때 신인급 기수 중 기량이 가장 탁월한 문세영이 2018년쯤 1천승 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세영 기수는 현재 1백11승을 기록하고 있다.

기수가 전국 각지의 경마장을 찾아다니며 무제한 출전하는 외국과 달리 과천 서울경마공원 한 곳에서 하루에 여섯 경주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 제한적인 조건에서 거둔 1천승 기록은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경마계에서는 박태종의 1천승을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견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본다.

박태종 기수 외에도 경마 대중화를 선도하는 기수들이 있다. ‘과천벌 얼짱’으로 꼽히는 이애리·문세영 기수가 바로 그들이다. 1980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인 이들은 뛰어난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해 경기가 있을 때마다 누나 부대와 오빠 부대를 몰고다닌다. 순수하게 경마를 즐기는 아마추어 팬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스타 기수들이다.
가수 이효리를 닮은 눈웃음이 매력적인 이애리 기수는 열성 팬을 가장 많이 몰고다닌다. 경마일이면 그녀의 복색을 본떠 만든 노랑색 바탕에 검정색 글자로 된 응원 플래카드가 걸리고, 꽃을 전해주기 위해 예시장을 기웃거리는 남성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팬카페 ‘스위트자키’는 회원 수만 1천명을 넘어섰다. 회원 평균 연령은 35세, 대부분 미혼이다. 이애리 기수는 찰랑이는 긴 생머리를 잘라 보고 싶지만 팬들의 성화에 자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릴 정도다. 탤런트 권상우에게 열광하고 보드 타기에 푹 빠져 사는 전형적인 신세대이지만, 경주로에만 들어서면 놀라운 승부 근성을 발휘해 팬들을 열광케 한다.

‘과천벌 어린 왕자’라고 불리는 미소년 문세영 기수는 여성 경마팬 수를 늘린 일등공신이다. 5백명에 육박하는 팬카페 회원 역시 대부분 여성이다. 문세영 기수는 경마공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10대 팬을 몰려오게 한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대상 경주를 앞두고 긴장되는 순간에도 경마공원 아나운서와의 인터뷰에서 “조교사님이 그냥 말에서 떨어지지만 말래요”라고 말해 수많은 경마 팬의 폭소를 자아냈을 정도로 유머 감각도 풍부하다. 2001년 데뷔한 문기수는 실력으로도 20기 스타 군단을 이끄는 최전선에 서 있다. 지난해에는 최연소·최단기 100승을 달성해 ‘차세대 리딩자키’로 손꼽히고 있다.

스포츠와 스타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다. 스타 기수들이 젊은 경마 팬을 끌어들이면서 경마를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경마는 아저씨들이 즐기는 일종의 도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경마 팬의 대다수는 남성이다. 마사회의 분석 결과, 현재 경마 팬은 남성(78.4%)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경마 팬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여성 팬이 2001년 11.7%에서 2002년 18.4%, 2003년 21.6%로 늘고 있어 올해는 경마팬 4명 중 1명은 여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20대 젊은 팬도 10.7%, 14.8%, 17.0%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학력 경마 팬이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대학교 재학 이상 학력을 가진 경마 팬은 42.6%에서 45.7%, 48.7%로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프로 야구에서 이승엽 선수가 56호 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하던 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찬사가 줄을 이었다. 경마가 프로 야구 같은 대중 스포츠로 거듭난다면 박태종 기수 1천승이 가진 의미를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경마의 도박성을 줄이면서 관전하는 재미를 제공하고 참여를 유도한다면 ‘레포츠 경마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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